[천자칼럼] 샹그릴라 신드롬

영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은 대공황 이후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서양인들이 꿈꾸던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다.

이 소설에는 히말라야 산중의 '샹그릴라(Sangri-La)'라고 하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라고 한다.이 마을은 한마디로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청춘을 누리는 이상향이다.

샹그릴라는 실현불가능한 이상세계란 측면에서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플라톤의 유토피아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우리 삶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젊음'으로 나이를 거부하는 것이다.지금 우리 사회에는 40~50대를 중심으로 노후생활을 젊게 보내고 싶어하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소위 '샹그릴라 신드롬'이다.

중년여인들은 '몸짱'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하면,'아줌마 패션'을 거부하고 의류와 화장품 등의 소비를 늘려가고 있다.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여 외적 경쟁력을 갖추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엄마를 대신해 가사 및 육아에 적극적인 '슈퍼 대디(Super Daddy)'가 늘어나는 것도 샹그릴라 신드롬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직장 동료나 가족들에게 젊게 보여 하등 나쁠 게 없다는 심산이다.

심지어 노화는 생리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질병이라고까지 여길 정도다.

수필가 피천득은 "지나간 날의 여인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는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일 게다.

어떤 작가는 "친구들이 젊게 보인다고 치하할 때는 벌써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얼굴과 몸의 외양만을 추구하는 샹그릴라의 낙원뿐만 아니라,지평선 너머 영원한 정신의 샹그릴라도 찾는 중년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