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37기 이색 졸업생들 ‥ 이주희씨, 연수원 최초 외국계로펌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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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인 사법연수원에서도 인생역전이 가능할까.
15일 열린 제37기 사법연수원(원장 손기식) 졸업식.박인우씨(31)의 감회는 여느 졸업생과 달랐다.그에게 사법연수원 2년차는 포기와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다 새로운 희망을 찾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박씨의 연수원 1년차 성적은 변호사 생활도 쉽지 않다는 최하위권.뜻대로 공부도 되지 않았고,적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포기도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훌륭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떠올리며 2년차에 들면서 다시 펜을 들었다.방황의 시간을 벗어던지고 남들보다 책장을 한 장 더 넘겼다.그 결과 최하위권이던 성적은 1년 만에 무려 600등 이상 올랐다.그는 "사법연수원 1년차 때는 심리적인 압박도 많이 받았고 공부에 대한 개념도 부족해 많이 헤매느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게 성적이 오른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연수원을 마치고 공익근무요원 법무관으로 가는 박씨는 사법연수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성적 향상자'표창도 받았다.
연수생 이주희씨(29)는 연수원을 마치고 곧바로 외국계 로펌에 가게 된 첫 케이스.이씨가 2월부터 갈 예정인 로펌은 영국계 링크 레이터스의 홍콩지사다.이 회사는 전 세계 20여 곳에 지사와 1500여명의 변호사를 두고 있고,연간 매출액이 세계에서 두 번째일 정도로 큰 세계적인 로펌이다.교육 기회도 많고,근무 여건도 국내 로펌보다 좋아 외국계 로펌에서 근무해 보고 싶었던 이씨는 3개월의 변호사 실무 수습도 이곳에서 마쳤다.실무 수습을 지켜보고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링크 레이터스가 그에게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받아들였다.중ㆍ고교 시절 3년 동안 미국 생활을 바탕으로 닦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외국계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가족들의 뒷받침이 큰 힘이 됐다.이씨는 "세계적인 외국계 로펌에서 다른 나라 변호사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기업 법무에 관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영주 사법연수원 교수는 "올해 처음으로 영미법 원어민 강의를 도입하고 실무 수습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단체 실습을 확대해 연수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여느 해 졸업생들보다 고생하며 공부한 연수생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심정이 짠하기만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밖에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쌍둥이 아들(동생은 지난해 수료) 중 형 영욱씨와 이공현 재판관의 아들 승규씨,문영호 전 부산지검 검사장의 딸 지수씨도 새로운 법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수료식에서 대법원장상은 연수원 수석을 차지한 이경민씨(26ㆍ여)가 받았고,법무부장관상은 박미선씨(26ㆍ여)가 받아 각각 수석과 차석을 여성이 석권했다.올해 졸업생의 여성 수료생은 312명으로 전체 수료자 973명의 32%를 기록,지난해 242명(24.8%)보다 7.2%포인트 증가하는 등 역대 가장 높은 수치로 집계됐다.수료 연수생 가운데 195명은 판ㆍ검사(판사 95명,검사 100명)를 지원했으며 33명은 대기업의 사내 변호사를 택했다.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연수생은 280명이다.
이날 졸업식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정성진 법무부 장관,소순무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등 법조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