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화 속 의료

성명훈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원장 mwsung@snu.ac.kr >

우리는 흔히 주위에서 어떤 국가나 기관,또는 기능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독특한 상징들이 사용되는 것을 본다.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상징은 호랑이이고,미국의 상징은 독수리이며,소방서의 상징은 빨간 불자동차다.그럼 병원이나 의료의 상징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붉은 십자가'일 것이다.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붉은 십자가는 앙리 뒤낭에 의해 태동한 국제적십자사의 상징이다.대신 주위의 상징들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세계보건기구의 로고나 의료 기관들,그리고 앰뷸런스 등에 그려져 있는 뱀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모양의 로고도 기억할 것이다.법조계의 상징이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의료의 상징이 '지팡이에 뱀'이라니,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는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라고 불린다.아스클레피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와 요정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의술의 신'이다.아스클레피우스는 엄청난 신통력으로 죽은 자도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이로 말미암아 제우스 신으로부터 미움을 받았고,번개로 죽임을 당했다가 아폴로의 요청에 의해 다시 신의 지위로 올라가게 됐다고 한다.지팡이와 뱀이 같이 하게 된 연유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뱀이 허물을 벗음으로써 재생과 부활을 뜻하기에 의술의 상징이 됐다는 설도 있고,뱀이 아스클레피우스에게 약초를 물어다 주었다는 신화적 스토리도 있으며,심지어는 당시 흔하던 기생충을 막대로 꺼내던 시술에서 유래한 모습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스클레피우스의 신화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스클레피우스가 세 아들과 두 딸을 두었는데,이들이 후세에 각각 의료를 이루는 주요 부문,즉 내과,외과,약물,회복(간호),위생의 시조가 됐다는 것이다.현대의 의료를 보면 특히 그렇지만,의료라는 것은 본래 어떤 '용한 의사'나 개인이 혼자서 모든 것을 알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여러 분야의 팀워크가 중요하고,최선의 결과를 위해서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그리고 사회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아스클레피우스가 아버지의 지위에서 '의술의 신'이었던 것처럼,'완성된 의료'는 각 분야의 총체적 협동을 통해 이뤄진다는 의료의 진정한 모습을 이미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보는 것 같아 새삼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