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리는 원자재 구매담당자들 "내달이면 재고 바닥나는데…"

"3월 말이면 유연탄 재고가 완전 바닥나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현대시멘트) "당장 4월부턴 제품을 만들 밀을 구할 길이 막막하다."(대한제분) "포도주스 만들 포도원액조차 못 구할 판이다."(롯데칠성음료)

세계적인 곡물.원자재 가격 급등과 품귀 속에 각 기업 구매담당자들의 피말리는 하소연이다.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1~2개월 주기로 국제입찰에 참여해 물량을 확보해온 기업들은 남은 재고가 떨어지면 가격 불문하고 다시 구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시멘트업계는 당장 가동 중단을 걱정하고 있고,석유화학업체들은 원자재 구매선의 터무니없는 '웃돈' 요구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최근 가격이 폭등한 밀 구매 담당자들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CJ제일제당 제분팀의 박경용 부장(38)은 27일 출근하자마자 전날 밀 선물시세를 체크하다 맥이 탁 풀렸다.시카고선물거래소뿐 아니라 캔자스,미니애폴리스 등 밀을 취급하는 선물시장 세 곳 모두 밀 시세가 사흘 연속 상한가였기 때문이다.

박 부장은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고,뚫어져라 시세판 들여다보고 있는 게 전부"라고 한탄했다.대한제분 관계자도 "구매선에 1등급을 요구했는데 2등급을 내놓거나,세 가지 맥종을 주문하자 두 가지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사가라고 배짱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롯데칠성음료에서 음료 원료 수입업무만 9년째 맡고 있는 고관재 외자팀장은 "수입처를 스페인에서 올해 미국으로 바꾸고 6개월치 물량을 확보해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그 이후 포도원액을 살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고 팀장은 올 들어 오전 8시30분 출근해 퇴근까지 포도원액 구매를 위해 인터넷,해외공급처 등 전 세계를 뒤지는 게 일과다.포도원액은 작년 가을 이후 가격이 70% 이상 뛴 데다 세계적인 와인 열풍으로 와인을 만들어 파는 게 더 이득이어서 아예 원액 공급을 중단하는 거래처들이 늘고 있다.

옥수수를 원료로 쓰는 대상,CPK,신동방CP,삼양제넥스 등은 물량 확보가 어려워지자 GMO 옥수수 수입을 검토하거나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태다.옥수수 주요 생산국인 브라질산 옥수수는 이미 유럽국가에서 전량 수입해 간 상태여서 올 5월부터 GMO(유전자조작) 옥수수의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임동만 대상 조달부장은 "최근 일반 옥수수의 국제가격은 t당 520달러이며 GMO 옥수수는 340달러로 100달러 차이가 나 GMO로 몰리고 있는데 올 하반기부터 GMO 옥수수 가격도 상승할 것으로 보여 물량확보에 비상이 걸릴 듯하다"고 전망했다.

세계적 철강기업인 포스코도 사정이 어렵기는 식음료 업계와 마찬가지다.포스코 원료구매실 윤성원 과장은 "예전엔 철광석을 사러 호주,브라질에 출장을 다녔는데 요즘은 아프리카 등 안 가는 곳이 없고,얼마(가격)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물량 확보)이 문제"라고 말했다.포스코 구매팀은 심지어 퇴근 후에 주요 해외 원료공급사의 국내 사무소 직원들과 음악회나 뮤지컬 등 문화행사도 함께한다.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지난달 중국의 최악의 폭설 여파로 유연탄 수출이 금지되면서 시멘트 업계는 유연탄 확보 전쟁을 치르고 있다.현대시멘트 자재부 김명희 과장은 "유연탄을 많이 쓰는 발전회사나 다른 시멘트 회사를 찾아 손 벌리러 다니는 게 일과가 됐다"고 전했다.

생활경제부/산업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