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겹치는 공기업 "내 땅 지켜라"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안 발표가 내달로 예정된 가운데 공공기관들 간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중복 업무의 통폐합이 예상되는 기관들은 해당 업무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해당 업무가 타 기관으로 넘어갈 경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만큼 '파이'를 최대한 많이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직이 통폐합되거나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기관들은 '존재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뛰고 있다.


◆업무 지키기 총력12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국유재산 위탁관리,부실채권 정리 등 유사 업무의 통합을 앞둔 공공기관들 간 치열한 물밑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국유재산 위탁관리업무의 주도권을 놓고 국토해양부 산하의 토지공사와 대립하고 있다.

국유지 현황 파악과 관리를 위해 재정부 국고국이 위탁한 이 업무는 부실관리에 대한 감사원 지적이 수차례 제기되면서 2004년부터 캠코와 토지공사가 함께 국유지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왔다.토지공사는 국토의 효율적 관리와 가치 상승을 위해 자신들 중심으로 업무일원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캠코는 250여명의 전문인력이 1997년부터 이 업무를 맡아온 만큼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캠코는 또 부실채권 정리 업무를 두고 예금보험공사와 대립하고 있다."부실채권 정리는 우리의 기본 업무인 만큼 예보산하의 정리금융공사(RFC)는 없애야 한다"는 것이 캠코의 주장이다.

반면 예금보험공사는 1993년 산하에 설립된 RFC가 세차례나 기한을 연장해 부실채권 정리 업무를 지금도 하고 있는 만큼 캠코에 흡수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예보 관계자는 "캠코는 부실채권을 시장가격에 매입하는 만큼 회수율이 낮은 데다 17개 시중은행(지분율 30%)이 주주여서 일부 수익이 민간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RFC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관 구조조정에도 촉각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들 간에도 중복 업무 조정은 물론 기관 간 통폐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구조조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지경부는 에너지 분야의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을 평가ㆍ관리하는 4개 전담기관(에너지기술기획평가원 에너지관리공단 전력산업기반조성센터 신재생에너지센터 등)을 통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업종별ㆍ분야별로 8곳이나 난립해 있는 기술평가기관(산업기술평가원 산업기술재단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부품소재진흥원 기술거래소 디자인진흥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국가청정지원센터 등)을 하나로 합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복 논란이 일었던 KOTRA 중소기업진흥공단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등의 해외마케팅 지원 기능은 기관별로 특화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KOTRA 국내무역관(11개)과 중진공 해외사무소(4개)는 폐쇄키로 했으며 중진공 수출인큐베이터(17개)는 KOTRA가 운영하도록 했다.

옛 정보통신부 산하에 있던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의 해외 정보기술(IT)지원센터 7곳도 KOTRA로 이관된다.

한편 청와대는 현재 300여개 공기업 중 통폐합 및 구조조정 대상 공기업을 250여개로 분류,중복 업무를 일원화시켜 불필요한 인력은 대폭 줄여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한 공기업 관계자는 "사안의 성격상 부처 간 자율협의를 통해 조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칼자루를 쥔 청와대를 향해 전방위 로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류시훈/차기현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