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패권시대] 제1부 (3) '자원포퓰리즘의 원조' 베네수엘라


정상외교없인 ‘100년 석유’도 그림의 떡

카리브해 연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들어서자 강한 휘발유 냄새가 풍겼다.거리를 가득 메운 중고차들에서 쉴 새 없이 뿜어나오는 불완전 연소된 배기가스가 그 원인이었다.

폐차 직전인 중고차를 몰면서 어떻게 비싼 기름을 넣고 다닐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페데베사(PDVSA)가 직영하는 주유소에 가 보니 금방 의문이 풀렸다.휘발유 1ℓ에 0.08볼리바르(1달러=2.15볼리바르).이는 달러로 3.7센트,한화로는 약 38원 꼴이다.

세계에서 가장 싼 휘발유 값이다.

영어강사 안토니오 피뇰라씨(31)는 "우리는 산유국이지 않느냐"며 "내가 타는 1992년형 포드자동차에 80ℓ를 꽉 채우는 데 3달러면 충분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원유 매장량 세계 1위ㆍ가스 8위

자원부국 베네수엘라가 고유가 시대를 맞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자원포퓰리즘의 원조인 데다 연일 미국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때문이다.차베스가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이 확인된 것만 세계 6위인 800억배럴에 달하기 때문.그러나 이 나라엔 아직 별로 캐내지 않은 엄청난 초중질유가 매장돼 있다.

그동안 중동산 경질유에 비해 정제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주목받지 못했지만,정제기술이 발달하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그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한 기름이다.

초중질유 매장량은 무려 1조3000억배럴에 달한다.

이 중 채굴 가능한 것만도 2720억배럴이다.

이를 합치면 베네수엘라의 가채 매장량은 3500억배럴에 달해 사우디아라비아(2643억배럴)를 훨씬 웃돈다.

뿐만 아니라,천연가스 매장량도 148조입방피트(ft³)로 세계 8위다.

미주 대륙에선 미국 다음으로 많다.

그래서 지난 4월 한국에서 열린 차세대지도자 대회에 참석했던 에너지전문 변호사 에르네스토 후엔마이어씨(37)는 "베네수엘라는 석유로 100년,가스로 10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자원부국"이라고 자랑했다.

◆오리노코 개발에 세계 이목 집중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 오리노코.세계 최대 초중질유 매장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반 오레야나 에너지석유부 국제협력국장은 "오리노코 유전지대는 베네수엘라의 미래이자 국부의 원천"이라며 "남미 사회주의 연대와 중화학 중심 산업개편,사회개발사업을 위해서도 오리노코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리노코의 경제적 가치는 수십,수백조원에 이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리노코의 전체 31개 광구 중 27개 광구를 2~3년 내 분양할 계획이다.

나머지 4개 광구는 이미 생산이 진행되고 있다.

각국은 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자원외교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미 뿌리내리고 있다.

1996년 리펑 총리의 방문과 2004년 12월 차베스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 간 포괄적인 경제협력협정 및 세부협력 약정을 맺어 이미 '기초작업'을 마친 상태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2005년 원유 수입량의 15∼20%를 베네수엘라로부터 장기 도입키로 합의했고,2006년엔 오리노코 지역 2개 광구 탐사권도 따냈다.

◆한국에는 '그림의 떡'

그러나 한국은 베네수엘라의 엄청난 원유ㆍ가스 매장량을 강 건너 불보 듯하는 실정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한국석유공사가 유일하다.

그것도 1997년에 하루 생산량이 3000배럴에 불과한 오나도 광구 지분 14.1%를 인수한 게 전부다.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적 불안정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 안전을 담보할 정부 간 자원개발 협정도 없다.

신숭철 주(駐) 베네수엘라 대사는 "지난해 8월 정부 간 협정 체결을 처음 제안했으나 아직 베네수엘라 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아 큰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답답해 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베네수엘라가 한국에 냉담한 것은 정치적 이유가 많다"며 "반미 일변도인 차베스 정권으로선 미국과 가까운 한국이 달가운 협력대상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2004년 차베스 대통령이 방한을 제의했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한 게 양국 간 자원협력을 어렵게 한 결정적 이유"라고 귀띔했다.

차베스가 중국 방문길에 성공적 경제개발 모델을 가진 한국을 찾으려 했으나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틀어졌다는 것.이에 대해 외교부는 확인을 거부했다.

박찬길 KOTRA 카라카스 관장은 "자원개발이 절실한 만큼 실용외교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딛고 실리를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도 "베네수엘라의 자원을 가져오려면 양국 정상 간 대화로 푸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특별취재팀
카라카스(베네수엘라)=오형규생활경제부장(팀장),현승윤 차장,박수진,이정호,장창민,이태훈,김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