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씨 '붉은 비단보' 출간 ‥ "현실과 예술의 '아름다운 공존' 녹여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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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과 나혜석의 공통점은 온 생을 예술에 바쳤지만, 현실과의 불화 속에서 자살과 객사로 삶을 마감한 불행한 예술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 권지예씨(48)는 "이들이 광기와 정념으로 날세운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예술가, 특히 여성 예술가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2002),<꽃게 무덤>으로 동인문학상(2005)을 받은 그가 이 같은 '클리셰(진부한 생각)'에 대항하는 장편소설 ≪붉은 비단보≫(이룸)를 내놨다.
14일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권씨는 "예술이든 일상이든 한 세계에만 경도되는 것은 강박관념을 낳고, 이 또한 자유롭지 못한 생각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에 뛰어난 예술가의 열정을 타고난 여성 '항아'의 일대기다.'항아(恒我)'는 아들을 바라는 부모의 개남(開男)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항상 온전한 자신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주인공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과 열정의 균형을 중시했던 냉철한 여성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붉은 비단보는 항아가 정인이었지만 신분 차이로 헤어진 준서를 추억하며 그린 그림과 쓴 글을 담아 둔 보자기다.작가는 조선시대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인 생을 주요 모티프로 불러들였다.
소설가 정이현의 표현대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신사임당의 이면을 상상으로 복원해낸 것.자유를 억압하는 양반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자살한 가연과 기생이 된 초롱 등 그의 동무들은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연상케 한다.
권씨는 항아를 두고 "끊임없이 일상과 예술세계를 공존시키는 색다른 예술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화려하거나 비극적인 삶으로 예술가적 아우라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히 현실적이면서도 성찰적이고,분열적이면서도 타협적인 예술가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의 정열을 미적지근하게 내보인 것은 아니다.
준서에 대한 그리움과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예술혼은 '광녀가 문을 내달라고,창을 내달라고 울부짖고 있다'는 표현만큼 처절하게 묘사된다.
동시에 항아가 '여인으로서 살아내야 할 삶,보란 듯이 잘 살아내겠다.
아내든, 어머니든, 며느리든, 딸이든.그게 우주의 원리고 이치라면 따르리라'며 다짐하는 모습에선 무서우리만큼 현실에 충실하다.
작품 곳곳에서 항아와 가연, 준서가 지은 한시들을 읽는 것도 묘미.
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것부터 조선 한시, 고대 중국 여인들이 쓴 시까지 다양하게 차용됐다.권씨는 "현실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예술가의 경지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했다"며 "하지만 결국 예술가란 작품으로 남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하지만 소설가 권지예씨(48)는 "이들이 광기와 정념으로 날세운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예술가, 특히 여성 예술가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2002),<꽃게 무덤>으로 동인문학상(2005)을 받은 그가 이 같은 '클리셰(진부한 생각)'에 대항하는 장편소설 ≪붉은 비단보≫(이룸)를 내놨다.
14일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권씨는 "예술이든 일상이든 한 세계에만 경도되는 것은 강박관념을 낳고, 이 또한 자유롭지 못한 생각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에 뛰어난 예술가의 열정을 타고난 여성 '항아'의 일대기다.'항아(恒我)'는 아들을 바라는 부모의 개남(開男)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항상 온전한 자신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주인공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과 열정의 균형을 중시했던 냉철한 여성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붉은 비단보는 항아가 정인이었지만 신분 차이로 헤어진 준서를 추억하며 그린 그림과 쓴 글을 담아 둔 보자기다.작가는 조선시대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인 생을 주요 모티프로 불러들였다.
소설가 정이현의 표현대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신사임당의 이면을 상상으로 복원해낸 것.자유를 억압하는 양반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자살한 가연과 기생이 된 초롱 등 그의 동무들은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연상케 한다.
권씨는 항아를 두고 "끊임없이 일상과 예술세계를 공존시키는 색다른 예술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화려하거나 비극적인 삶으로 예술가적 아우라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히 현실적이면서도 성찰적이고,분열적이면서도 타협적인 예술가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의 정열을 미적지근하게 내보인 것은 아니다.
준서에 대한 그리움과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예술혼은 '광녀가 문을 내달라고,창을 내달라고 울부짖고 있다'는 표현만큼 처절하게 묘사된다.
동시에 항아가 '여인으로서 살아내야 할 삶,보란 듯이 잘 살아내겠다.
아내든, 어머니든, 며느리든, 딸이든.그게 우주의 원리고 이치라면 따르리라'며 다짐하는 모습에선 무서우리만큼 현실에 충실하다.
작품 곳곳에서 항아와 가연, 준서가 지은 한시들을 읽는 것도 묘미.
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것부터 조선 한시, 고대 중국 여인들이 쓴 시까지 다양하게 차용됐다.권씨는 "현실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예술가의 경지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했다"며 "하지만 결국 예술가란 작품으로 남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