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송홧가루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 박목월의 시 '윤사월'에 나오는 이 처녀는 안타깝게도 눈이 멀어 송홧(松花)가루가 만들어 내는 자연의 장관을 볼 수가 없다.하는 수 없이 소녀는 문설주에 기대서서 귀로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송홧가루는 봄바람에 피어나는 뭉개구름처럼 능선마다 봉우리마다 가득하다.

바람이 건들 불기만 해도 노란 송홧가루는 안개처럼 퍼진다.입자는 얼마나 곱고 색깔은 어찌나 예쁜지.게다가 부드러운 촉감은 그 어떤 비단에 견줄까 싶다.

송홧가루가 연출하는 봄의 풍경은 색다른 볼거리다.

우리나라 산림의 25%가 소나무인데다 군락지가 많아 해마다 5월이 오면 송홧가루는 암꽃을 찾아 춤을 춘다.소나무는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수꽃이 낮은 가지에서 먼저 피어 꽃가루(송홧가루)를 만든다.

이 꽃가루에는 공기주머니가 붙어 있어 가볍게 날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송홧가루는 멋진 먹거리이기도 하다.수비(水飛)라 해서 꽃가루를 물에 풀어 잡물을 없앤 뒤,곱게 체에 내려 이를 말려 보관한다.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송홧가루를 섞어 다식을 만드는가 하면 꿀을 넣어 먹기도 한다.

차(茶)를 가까이 한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고운 빛깔을 띤 다식을 무척이나 즐겼다.

송홧가루는 소나무에서 피어 나기에 더욱 사랑을 받는 것도 같다.

소나무는 정신적으로는 정절의 표상이고,실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요긴한 나무였다.

솔잎으로 송편을 찌고,송순으로 술을 빚고,청솔로 도자기를 굽고,가옥의 목재로 쓰고,송진이 묵으면 호박(琥珀)이 되어 귀중한 패물로 쓰였다.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청솔가지를 달았고,묘앞에는 청솔을 심었다.우리를 저버린 적이 없는 소나무는 아무리 늙어도 꽃이 피기에,그 송홧가루가 만드는 자연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한가 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