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앞둔 대학가, 방 구하기 '비상'

복학을 준비 중인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성승환씨(25)는 최근 서울 왕십리동에서 자취방을 구하러 중개업소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13㎡(4평)짜리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었기 때문.군 입대 전인 2005년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이면 비슷한 크기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성씨는 "불과 3년 새 원룸 임대료가 전셋값 기준으로 2000만~3000만원 정도 뛴 것 같다"며 "부동산중개소를 5~6군데나 돌아다녔는데 형편에 맞는 방을 못구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 등으로 대학가 주변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대거 헐리면서 전.월세 가격이 치솟고 있어서다. 흑석 뉴타운과 맞닿아 있는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주변은 특히 심각하다. 학생들이 모여 살던 흑석동 지역 노후 주택은 모두 9개 재개발 구역으로 나뉘어 대부분 사라질 처지다. 흑석4구역과 5구역은 이미 철거가 시작돼 '집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문 쪽인 흑석동의 집이 헐리자 후문 쪽인 상도동에 수요가 몰리면서 전.월세 가격이 뜀박질하고 있는 것.6000만~7000만원 하던 33㎡(10평) 미만 다세대주택의 전셋값이 1억원까지 치솟았다. L씨(24.중앙대 의대)는 "매물이 없고 가격도 크게 올라 새 자취집을 구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다"며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허리가 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서강대 부근인 서대문구 아현동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지역은 아현 뉴타운 개발로 이주 수요가 늘면서 전세 가격이 20~30% 정도 올랐다. 2~3년 전 4000만원 선이던 다세대주택(23㎡ 전후) 전셋값이 5000만~5500만원 선으로 상승했다.

신촌 대명공인 김진학 사장은 "학생들이 1~2년 전 시세의 월세를 찾아 옮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첫 계약 때보다 웃돈을 얹어주더라도 방을 잘 빼지 않아 매물이 줄었다"며 "집주인이 1500만원을 올려 달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전.월세 가격이 뛰자 학생들은 반지하나 옥탑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양대 주변 성동구 왕십리동 태화공인 김정민 사장은 "4000만원 이하로 구할 수 있는 전세가 거의 없다 보니 돈 없는 지방 학생들은 지하나 반지하 원룸을 찾고 있다"며 "반지하의 가격대가 2500만~4000만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싸고 크기도 20~24㎡로 쓸 만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등이 몰려 있는 휘경.이문 뉴타운 지역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잇따라 기숙사를 신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기숙사비가 비싸 '그림의 떡'이다. 대학들이 민간 업체와 손잡고 BTL(Build-Transfer-Lease) 방식으로 기숙사를 지어 건설비 부담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어서다. BTL 방식은 민간 사업자가 기숙사를 지어 장기간 운영하면서 투자금을 회수한 뒤 소유권을 대학에 넘겨 주는 방식.

숙명여대에 다니고 있는 서연주씨(22)는 "기숙사비가 한 학기(16주) 150만원에 달해 부담을 줄이려 혼자 방을 쓸 수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갔다"며 "기숙사비를 조금이라도 내리면 학생들의 형편이 나아질 텐데 오히려 학교가 학생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주거난을 덜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뉴타운과 재개발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동산 자문회사인 나비에셋의 곽창석 사장은 "뉴타운 등으로 서울 시내에서 한꺼번에 대규모 이주가 일어나면서 서민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며 "개발이 시작될 때는 이주 시기를 조정하고 개발 이후에도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많이 짓도록 뉴타운 재정비 촉진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

/김정환/최창규 인턴(한국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