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리포트] 칠레 (上) ‥ FTA로 먹고 사는 나라…"개방만이 살길" 국민 80%가 FTA 지지


지난달 28일 오후 9시 칠레 수도 산티아고 시내에 위치한 '메스티조'라는 이름의 고급 음식점.요즘 산티아고에서 꽤나 인기가 높다는 이 퓨전 레스토랑은 월요일 비교적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님으로 시끌벅적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자주 찾는다는 이곳에는 정장을 한 단체 손님들이 끊임 없이 찾아들었다. 요즘 칠레 경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전 세계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칠레는 좀 달라 보였다. 매년 무역 흑자 규모가 늘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이 나라에서는 인플레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취약한 산업 기반을 조기 개방으로 극복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1만달러를 넘을 전망이고 외환보유액 경제성장률 등에서 다른 남미 국가들을 확연하게 앞서간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청렴도,정치적 안정성이 높고 치안 상태도 좋은 데다 IT(정보기술)와 통신환경,사회 인프라 등도 중남미 국가 중 제일 잘 갖추어져 있다. 중남미 국가 중 국가신용등급이 A인 유일한 나라가 칠레라는 점만 봐도 이 나라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칠레는 정작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이렇다 할 천연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 석유는 물론 천연가스조차 거의 없어 인근 국가들로부터 수입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형편이다. 물론 구리의 매장량과 생산량이 세계 1위지만 구리 외에는 이렇다 할 지하자원도 없다.

게다가 일찍부터 외국으로부터 값싼 공산품이 수입돼 국내 제조업 기반이 성장하지 못했다.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불과한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인구 역시 국토 면적에 비해서는 적은 1600만명에 불과,내수 시장도 협소한 편이다.

이렇게 불리한 여건을 지닌 칠레가 중남미 최고의 부국이 된 것은 일찍부터 개방정책을 편 덕분이다. 1970년대 피노체트 군사정권 시절부터 국내 정치 안정을 토대로 민영화를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인투자 유치 등 개방화를 확대했다. 1990년 피노체트 군정이 종식된 후 계속 집권하고 있는 중도좌파연합은 실용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피노체트의 개방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1996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남미 미국 EU(유럽연합) 등 주요 국가들과 잇따라 FTA를 체결해 나갔다. 2006년 1월 집권 중도좌파연합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첼 바첼레트 역시 후 리카르드 라고스 전 대통령의 경제 노선을 그대로 수용,집권 후 파나마 페루 콜럼비아 등 중남미 국가와는 물론 중국 일본 등 FTA 체결 대상국을 아시아로 확대하며 적극적 개방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전 국민이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을 공유,FTA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80% 이상으로 높은 것도 도움이 됐다. 마르코 쉐트만 칠레 외교부 이코노미스트는 " 자유무역을 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에도 정부가 보조나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FTA 추진에 따른 사회적인 이해갈등이 없었다는 점 역시 주효했다.


◆FTA가 성장엔진한선희 KOTRA 산티아고 무역관장은 "칠레가 지금까지 FTA를 체결한 국가 수만도 무려 48개나 된다"며 "칠레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6%의 단일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주요국과는 모두 FTA를 체결한 관계로 평균 수입관세율은 실질적으로는 2%도 채 안 된다"고 설명했다.

FTA로 수출이 급증,구리 등 일부 광물과 농축임수산물,1차 가공품 위주인 칠레 수출은 매년 역대 기록을 경신 중이다. 2003년 처음 200억달러를 넘어선 이래 2004년 300억달러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658억달러까지 늘었다. 수출 호조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며 1990년대 6%대 성장에 이어 최근에도 연평균 4~5%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다. 무역수지 역시 최근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호조다.

FTA가 경제의 성장엔진이자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개방화로 칠레는 1990년 이후 남미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외환위기를 모면한 국가이기도 하다. 1994년 말 멕시코 페소화 위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2001년 아르헨티나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남미 전체가 위기에 전염됐지만 칠레는 개방에 따른 내성 강화로 위기를 회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 경제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높고 개방에 따른 경제체질 개선으로 투자위험이 낮아 외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점도 외국 기업들이 칠레를 중남미 교두보로 삼아 경쟁적으로 진출하게 된 배경이다. 실제 칠레의 국가 청렴도는 세계 20위권 이내일 정도로 높다. 칠레는 특히 다양한 국가와 연쇄적인 FTA 체결로 교역 확대 및 시장 접근 확보 등 개방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국가 간 FTA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까지 수행,많은 나라가 칠레가 형성한 FTA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 칠레와 FTA 체결을 추진토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산티아고=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