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조명전문가 바텐바흐 訪韓 "서울 인공조명 너무 밝아"

"한국에 올 때마다 느꼈는데 조명이 너무나 밝습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절감형 건축물이 아니면 지을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자연채광 조명시설 전문가 디터 바텐바흐(50)는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한국은 마치 기름이 솟아나는 나라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텐바흐는 건국대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미국 브라질 등 세계 약 20개국에서 수백여개 공공시설의 조명 컨설팅을 해온 '조명 달인'이다. 특히 자연광을 이용한 조명을 선호해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싱가포르 공항터미널,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모스크 등의 조명시설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국내에서는 1998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연채광 및 인공조명 시스템 설계를 맡기도 했다.

그는 특히 서울의 과다한 도시 조명과 건물 조명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를 지적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은 자연광을 이용한 조명 디자인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공 사례인데도 관심이 적고 오히려 낮게 평가받고 있다"며 "한국인들의 에너지 불감증은 도가 지나칠 정도라 놀랍다"고 꼬집었다.

"한국보다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멕시코나 브라질에서도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자연채광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밝고 휘황찬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그는 "한국에서 조명으로 쓰는 에너지의 60% 이상은 불필요한 것으로 오히려 건물의 온도만 높여 냉방비만 증가시키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건축주들의 의식 개선을 우선적으로 주문했다.

"건축주들이 길게 보고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시설에 투자할 용의가 있다면 많은 부분의 낭비를 없앨 수 있다"며 "야간에 조명을 줄이거나 자연채광을 이용한 조명 설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바텐바흐는 최근 한국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저탄소 녹생성장' 정책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이 같은 운동이 성공하려면 세금 혜택 등 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작은 아이디어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을 때 적극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영원히 쓸 수 있는 자원은 없습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