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족사진

이종화 <레이크우드CC대표 ryccgm@hankyung.com>

며칠 전 서울 공덕동 로터리에 있는 사진관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골목길에서 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가구며,가족사진들이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스튜디오'란 간판이 아니면 사진을 제대로 못찍는 곳으로 생각하는 시절이 됐습니다. '사진관'이란 이름을 고집하다 보니 어쩐지 창피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 사진관 주인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사진관을 찾지 않는 손님들을 탓하지 않고 40여년이 넘도록 같은 장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주인이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 손님이 없어 한적한 공간에 전시된 가족사진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중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자손들이 너무 많아 사진틀의 옆구리가 터질 것 같아 보이는 가족사진이었다. 6남매를 기르며 평생 건강하게 가정을 잘 이끌어온 남편과 아내를 중심으로 자녀,손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노년에 자녀,손자손녀들과 둘러앉아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유로움은 그 가족이 살아온 역사를 한눈에 읽게 해주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집 마당에서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사진관에 나와 가족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단순하게 사진관에 나와 가족사진 한 장을 찍은 것이었지만 그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억지일지 모르지만,그 일은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랑으로 연결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외눈박이 렌즈의 순간 포착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족사진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가족들과 사진관을 찾아가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이런 일이 내게는 너무나 사소했기에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에 빠져 살다 보니 정작 가족들과 소중한 것들을 함께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다 자라 버렸다.

마음의 여유로움이 없었다는 것이 새삼 아쉬웠다.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 또한 가족들의 희생과 인내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도 가슴속에 밀려왔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훑고 지나갈 즈음 "사진 나왔습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산을 마치고 사진관을 나섰다.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태양이 아직도 뜨거웠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진관'이 사라지기 전에 작고 사소한 행복을 찾아 온 가족이 나들이 한번 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