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별들의 희비 … 루이스 BOA 회장 "최악 공포때 기회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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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공포때 기회 찾아"'모두가 공포를 느낄 때 기회를 찾은 사람.'
15일 메릴린치를 500억달러에 전격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케네스 루이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61)에 대한 월가의 평가다. 루이스 회장은 올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위기에 빠진 미 최대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업체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 인수에 나서 지난 7월 40억달러 규모의 딜을 마무리한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까지 품에 안았다. 글로벌 신용경색 위기 속에서 남들이 겁을 먹고 피할 때 과감하게 인수ㆍ합병(M&A)에 나서 위기에 빠진 시장의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컨트리와이드 인수 당시 "이번 계약은 BOA가 모기지사업을 이끄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두려움보다는 기회를 강조했다.
루이스 회장은 미 조지아주립대를 졸업한 뒤 1969년 BOA 전신인 노스캐롤라이나네이션스뱅크(NCNB)에 신용분석가로 입사,2001년 CEO 자리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 플리트보스턴 파이낸셜을 사들인 데 이어 2005년과 2007년엔 각각 신용카드사 MBNA와 US트러스트코프를 삼켰다. 7년의 재임 기간에 인수를 성사시킨 금액이 1000억달러에 달한다.
루이스 회장은 이번 메릴린치 인수를 통해 신용카드 자동차대출 등 소매금융 전 분야와 채권ㆍ주식 영업 및 자산관리 등을 아우르는 월가 1위의 공룡 금융업체를 탄생시켰다. 그는 "글로벌 신용위기가 메릴린치같이 훌륭한 회사를 싼 값에 살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며 "두 회사의 결합으로 금융서비스 및 국제적인 영업망에서 경쟁자가 없는 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메릴린치의 이름과 증권중개 조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고릴라의 몰락.'
딕 풀드 리먼브러더스 회장(62)은 월가에서 '고릴라'로 통했다. 그의 독선적인 경영 스타일과 공격적인 투자 성향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을 맞음에 따라 월스트리트 최장수 CEO 중 한 사람인 풀드 회장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풀드 회장의 첫 직장은 공군 비행조종사였다. 상관과 주먹 다툼을 벌인 뒤 파일럿의 꿈을 접고 1969년 리먼에 입사했다. 이어 1994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CEO에 올라 올해로 15년째 역임했다. 그는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직후 리먼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극적으로 회사를 살려내며 월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1년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지고 9ㆍ11테러 여파로 금융시장이 일대 충격에 휩싸였을 때도 안정된 수익을 올려 주위를 부럽게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신용경색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매 분기 손실 규모가 커지는 와중에 우량 자산의 매각과 부실 부문의 분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장부가격 아래로 우량 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계속 주저하다가 위기를 키웠다. 게다가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으로 화를 자초했다.
특히 한국 산업은행과의 지분매각 협상이 무위로 끝나고 BOA와 영국 바클레이즈 등과의 막판 협상에서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해 적기에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CEO가 판단을 그르쳤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풀드 회장 못지않은 고집불통으로 알려진 메릴린치의 존 테인 회장이 발빠르게 BOA에 다가가 고분고분 합병을 수용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