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방대

2002년 10월 세계는 깜짝 놀랐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사람으로 일본의 학사 출신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가 선정됐기 때문이었다. 다나카는 일본 센다이 지방 국립대인 도호쿠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교토의 기계장비업체 시마즈제작소 연구소에 근무 중인 평범한 봉급쟁이 연구원이었다.

업적은 단백질을 비롯한 생체고분자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연성 레이저 이탈법(SLD)' 발견.대학 졸업 후 가전업체에 지원했다 떨어진 다음 입사한 시마즈제작소에서 레이저를 사용,금속 반도체 유기화합물 등의 분자 무게를 재는 질량분석 장치를 개발하던 중 찾아낸 방법이었다. 다나카는 당시 그 같은 결과를 얻게 된 요인으로 타고난 끈기와 쉴 새 없는 실험,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을 들었다. 아울러 초.중.고교와 대학을 모두 지방에서 다니고 직장 또한 교토에서 얻은 점을 꼽았다. 도쿄가 아닌 이들 중소 도시의 자연에서 호기심과 창의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6년 뒤인 올해 일본은 다시 이변을 일으켰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잇따라 받은 데다 수상자 중 세 명이 나고야대 출신인 게 그것이다. 물리학상의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나고야대에서만 공부한 순수 국내파,화학상의 시모무라 오사무 역시 나고야대 박사다.

명문이라곤 하지만 지방대학 출신의 이런 놀라운 성과는 전후(戰後) 향학열 하나만으로 연구에 매달렸던 교수와 학생들의 끈덕진 노력 및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스승인 사카다 쇼이치 교수가 주도했던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덕이라고 한다. 이번 일이 지방대학에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걸 보면 일본에서도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취업이 안돼 전공에 상관없이 '9급 공시(공무원시험)반'을 운영한다는 우리와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여길 게 아니라 우리 지방대학에도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