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14번째 신약 '일라프라졸' 탄생

소화제 '노루모' 만들던 일양약품
위궤양 치료제로 세계시장 도전

1957년 선보인 일양약품 '노루모'의 또 다른 이름은 '한국인의 소화·위장약'이었다. 노루모를 앞세워 국내 위장약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일양약품이 아스트라제네카의 '로섹'에 견줄 만한 글로벌 위장약 개발에 나선 건 그로부터 꼭 30년 뒤였다. 하지만 신약 개발은 중소제약사엔 버거운 일이었다. 새로 발견한 후보물질을 동물(실험용 쥐,원숭이,개)에 주입시키면 약독(藥毒) 탓에 여지없이 죽었다. 이 같은 독성실험 단계에서 폐기처분된 후보물질만 무려 1148개.결국 1996년 일양약품은 1149번째 시도만에 독성실험을 통과한 후보물질인 '일라프라졸(성분명)'을 손에 넣게 된다. 9년이란 시간과 1만5300마리의 생명을 투입한 성과였다.

일양약품은 다시 12년 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고,마침내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국산 14호 신약'으로 승인받았다.

1987년 개발에 나선 지 21년 만이다. 일라프라졸은 정부와 보험약가 협상을 거쳐 내년 초 '놀텍'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발매될 예정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지난해 신약 승인을 받아 올 5월부터 일선 병의원에서 처방되고 있다. 김동연 일양약품 대표(사진)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돌이켜보면 너무도 멀고 험한 길이었다"며 "놀텍의 효능이 아스트라제네카의 로섹은 물론 후속 제품인 '넥시움'도 능가하는 만큼 연간 1조원 이상 판매되는 블록버스터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위궤양 및 역류성식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결과 놀텍은 위산분비 억제 등 치료 효과에서 경쟁 제품인 넥시움이나 일본 다케다의 '프레바시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일양약품은 설명했다. 전 세계 위궤양 및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시장은 연간 30조원에 달한다. 국내 시장 규모는 연 3000억원 수준.

김 대표는 지난달 일본 다케다 측과 결별하면서 불거진 놀텍의 미국 진출 무산 우려와 관련,"현재 4개 글로벌 제약사와 미국 내 임상 3상실험 진행 및 북미·유럽 판권 이전 계약을 놓고 협의하고 있다"며 "6개월 내에 파트너를 확정해 임상 3상실험에 착수할 계획인 만큼 2010년 하반기에는 미국에 발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상 3상실험이 이미 끝난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경우 내년 중 출시할 예정이다. 일양약품은 2005년 7월 미국 TAP(다케다 아메리카의 전신)에 놀텍의 기술 및 해외 판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금 4400만달러와 제품화된 후 15년간 판매금액의 10%를 로열티로 받는 계약을 맺었지만,다케다 측과의 의견 충돌로 내년 초 실시하려던 미국 임상3상 실험을 최근 백지화했다.

김 대표는 "오히려 다케다와의 결별이 일양약품에는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지난 3년간 임상실험을 통해 놀텍의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진 만큼 다케다와 계약할 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새로운 파트너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6년 일양약품에 입사한 김 대표는 놀텍 및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인 'IY5511' 개발을 주도한 연구원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