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 '다섯가지 미스터리' 풀리나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폭풍이 지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폭풍을 예고하는 상황인지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이르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그동안 증시를 비롯 국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했던 주범인 '다섯 가지 미스터리'가 얼마나 풀리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자.

올 들어 가장 많이 제기돼 왔던 미스터리는 외국인들이 떠나가면서 한국 증시가 융단폭격을 맞은 점이다. 특히 주가 하락폭이 컸던 최근 4개월 동안 국내 증시를 빠져나간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은 150억달러에 달해 전세계 국가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는 그만큼 한국의 경제 여건이 안 좋다는 것일까. 그보다는 극심한 자금 부족에 시달렸던 미국 금융사들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집중 회수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에는 리보 금리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면서 외국인들이 매수세로 돌아서고 있다. 얼어붙기만 했던 국제자금시장에 또 다른 봄을 알리는 새싹이 돋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기대가 일고 있는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신용도가 태국보다 안 좋은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신용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을 보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직전의 한국은 5.6%에 달해 태국보다 무려 1.5%포인트 높았다.

이처럼 대외신인도가 태국보다 안 좋은 이유는 뭘까. 한국의 CDS 프리미엄이 올라간 데는 올 들어 태국은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인 데 반해 우리는 적자로 돌아서면서 순채무국으로 전락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다행히 지난달 경상수지가 10억달러 내외의 흑자로 예상되면서 CDS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 경상수지 흑자세가 정착된다면 각종 대외신인도 지표는 조만간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보유액이 든든한데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인 점도 외환시장의 미스터리였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국가다. 하지만 올 들어 원화 가치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직전까지 35%나 폭락해 경쟁국인 대만(-2.6%) 싱가포르(-4.8%)는 물론 태국(-13.2%)과 비교해도 3배에 달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한국처럼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상처)가 있는 국가에서는 심리적 요인이 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이 체결됐다는 소식만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177원 폭락한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심리 불안에 따른 달러화 가수요만 없다면 한국의 외환 사정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게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의 시각이다.

최근 제기되는 미스터리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 달 사이에 1%포인트 내렸음에도 시장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특히 '바늘과 실' 관계였던 기준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금리 체계상 기준금리가 내리면 시장금리는 떨어져야 한다. 시장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중은행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채마저 내다팔면서 '은행채 금리상승→CD금리 상승→주택담보대출 금리상승→가계 이자부담 가중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정책당국이 이 점을 중시해 은행채 지급보증에 나서고 있어 기준금리와 시중금리 간 차별화 현상은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통화지표상으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는데 정작 국민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것도 미스터리였다. 이른바 '풍요 속의 빈곤'이다. 이 미스터리는 한 나라 내에 돈이 안 돈다는 의미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당분간 실물경기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다섯 가지 미스터리로 볼 때 지난주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투자성과는 엇갈릴 것이라는 게 과거의 경험이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