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오바마 경제팀과 론스타 판결

이제민 <연세대 교수ㆍ경제학>

10년전 美 재무라인 컴백 제2론스타 없는 외자정책 마련을오바마의 경제팀이 확정됐다. 예상대로 로런스 서머스,티모시 가이트너 등이 요직을 맡았다. 로버트 루빈은 막후 실세 노릇을 할 모양이다. 그 이틀 뒤 한국에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불법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새 정부의 인사와 한국 법원의 판결은 비중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둘은 다 중요할 뿐 아니라 서로 관련이 있다.

둘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루빈,서머스,가이트너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미 재무부의 장관,차관,차관보였다. 당시 한국은 단기적 외화 유동성 부족 이외에는 위기가 일어날 조건이 없었다. 유동성 부족도 일본의 협조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것이 9월14일 미 재무부가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그 뒤 일본은 납작 엎드렸고,한국은 미 재무부의 '요리' 대상이 됐다. 그나마 한국이 국가 부도를 면한 것은 미 국무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재무부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 뒤 결과는 이렇다. 국내 자본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자본시장 완전 개방,고금리 정책,급격한 구조조정을 시행한 결과 외자(外資)는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올 들어 월스트리트가 스스로 만든 위기 때문에 그 대박의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막대한 '국부 유출'이 있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이것이 미 재무부의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몇 년 뒤 한국에 '반(反)외자 정서'가 만연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뒷간에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위기가 일어난 경위를 본다면 몇 년 뒤 반외자 정서로 표출된 것이 그나마 양반이다. 일부 미국 학자들은 미 재무부가 한 짓이 당시 바로 대다수 한국인에게 알려졌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한국은 호랑이에게 물렸다는 개념도 없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구조조정 요구가 그 전에 스스로 하려고 했던 개혁 내용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위기를 맞은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2000년대 들어 사실상 외환위기가 끝난 뒤에도 부실자산은 외자에 팔고 보자는 사고방식이 지배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다가 반외자 정서가 팽배하자 론스타를 걸었다가 이번과 같은 판결이 난 것이다. 이것이 오바마 경제팀과 론스타 판결이 관련된 연유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를 좀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오바마에 대해 한국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명분 없는 전쟁,오락가락하는 북핵 대처 방식에 질린 한국인 대다수가 오바마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분히 선거 전략으로 보이는 자동차 문제를 떠나 경제 문제에서 오바마가 부시보다 나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당장 지금 당면하고 있는 위기 해결에 있어서도 그렇다.

확실한 증거 없이 외자를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중요한 교훈이다. 억울하다고 재수 없는 놈을 골라 벌을 주는 식은 건전한 외국인 투자도 저해하는 자해 행위다. 그리고 물론 외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식 수사는 부실자산 처리 같은 정책적 결정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사라져야 하는 관행이다. 그리고 그런 개혁은 한국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 국가소송제' 같은 것으로 국내적 개혁의 출발점을 삼는다면 지난 위기 때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