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공포 사라져야 시장금리 안정될 듯 ‥ 금리1%P 파격 인하


한국은행이 11일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폭인 1%포인트 인하하면서 시장금리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한은이 아무리 기준금리를 내려도 회사채나 기업어음(CP)과 같은 시장금리는 오히려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한은이 '1%포인트 인하'라는 초유의 카드를 꺼낸 것도 따지고 보면 '충격조치'가 없이는 시장금리 하락을 유도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시장 "환영은 하지만…"한은의 파격적 금리인하에 대해 시장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시장금리도 하락세를 보였다. 3년만기 회사채금리는 신용도가 우량한 AA-급의 경우 0.24%포인트 낮아진 연 8.62%,신용도가 좀 처지는 BBB-급의 경우 0.20%포인트 떨어진 연 12.34%에 마감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의 경우 0.69%포인트 하락한 연 4.75%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시장에선 시장금리 하락폭이 기준금리 인하폭에 못 미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책금리 인하 효과가 시장금리로 파급되는 경로에 아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고채 금리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날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0.20%포인트 떨어진 연 4.01%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따라 3년물 기준으로 국고채 금리와 회사채 금리의 격차는 4.61%포인트에 달했다.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국제 금융위기가 본격화될 때 금리 격차는 1%포인트 안팎에 불과했다. 한은이 지난 10월 초부터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 행진을 시작해 두 달 만에 기준금리를 2.25%포인트나 내렸지만 국고채 금리만 내릴 뿐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1%포인트 이상 오르는 고공행진을 한 결과다.

이에 따라 한은의 통화정책도 '먹통'이 돼 버렸고 시장에선 국고채 쏠림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회사채 금리가 내려도 시장의 벤치마크(기준)인 국고채 금리와의 격차가 벌어지면 금융회사들은 국고채를 더 사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회사채를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년 1분기 이후에나 풀릴까전문가들은 이 같은 회사채 기피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금융회사들이 회사채를 사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국내외 경기침체로 '부도 공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채를 사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채를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느라 회사채를 살 여력도,살 마음도 없다.

윤항진 한국투자증권 채권팀장은 "누가 죽을지 누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채 투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며 "내년 1분기 이후에나 경색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회사채 등 취약부문에 대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준금리 인하는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지만 돈이 돌지 않는 곳까지 효과가 미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회사채나 CP 매입이 필요한 이유"라며 "미국 중앙은행도 그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이 그런 조치까지 나설지 주목된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금융비상 사태의 경계선에 와 있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아직 비상수단을 쓸 단계는 아니다"고 밝혀 성급한 기대에 제동을 걸었다.

주용석/서정환/강지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