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피아노를 닮은 곡선의 공간 사이 백남준의 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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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기를 앞서간 영상예술 창조자로 평가되고 있고,그의 업적과 작품은 그동안 많은 매체를 통해 수없이 소개돼 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최근 고인의 체취와 예술세계를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탄생했다. 작년 10월8일 문을 연 '백남준 아트센터'가 그곳이다.
이 건물은 2001년 백남준 선생과 경기도 간 양해각서를 토대로 건립기본계획이 짜여진 이후 2003년 국제건축가협회(UIA) 공인을 받은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생겼다. 당시 현상설계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적 건축가 43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뜨거웠다. 당선작으로는 독일의 젊은 신예 건축가 키르스텐 쉐멜(kirsten schemel)과 마리나 스탄코빅(Marina Stankovic)의 설계안이 뽑혔다. 그러나 실제 건물은 당초 설계안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지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에 애착을 갖고 지켜봤던 많은 건축가들은 지금도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태생과정에서부터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그래도 이 작품은 자연에 순응하는 듯한 정제된 조형미와 공간미가 조화를 이룬 수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전체적인 외형은 웅장하면서도 도시적 느낌이 드는 '유리박스'가 연상된다. 전시관치고는 큰 규모인데도 방문객들에게 위압적인 느낌을 주지않는다. 계곡 사이의 분지형 대지와 잘 어울리도록 설계된 외형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 건물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기존 건물들처럼 땅을 밟고 고압적 자세로 서 있는 형상이 아니다. 분지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아담한 숲 같은 모양이다. 이 건물은 특히 생전 백남준 예술의 화두였던 '실험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방문객들도 조금만 신경 쓰면 이 같은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우선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노력한 게 두드러진다. 예컨대 백남준 아트센터는 커튼월(건물을 둘러싸는 벽체) 위에 다양한 크기와 간격을 가진 검은 띠를 유리 위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장식을 했다. 이로써 외벽은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자연풍광이 담기는 풍경화 화폭이 되고,어느 새 자연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변하게 된다. 내부에선 전시물의 배경이 된다.
건물의 외피뿐 아니라 전체적인 건물형태도 대지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꾸며졌다. 둥그런 모양의 부지 형상에 맞추기 위해 건물 외형에도 곡선을 넣어 땅의 형상에 저항하는 모습을 줄였다.
그런데 이 건물의 핵심공간인 백남준 전시실만은 마치 피아노 곡선 같은 형상으로 돌출돼 있다. 이곳은 연극 ·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다른 곳보다 변화를 좀 크게 준 것이다. 이 덕분에 자칫 밋밋해져버릴 수 있는 건물에 반전효과가 생겼다. 건축 공간에도 기승전결의 얘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백남준 아트센터가 설계될 당시 가장 비중 있는 과제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담는 핵심 공간(그릇)은 어떠해야 하는가'였다. 현상설계 당선작을 낸 건축가는 '채우지 않은 빈 공간'에서 해답을 찾았다. 일단 건물 내부에 최대한 큰 면적을 마련하고,층고(2층 높이)도 높이는 방식으로 공간을 마련했다. 거기에는 별도의 칸막이 등 구조물을 넣지 않았다. 기둥도 없앴다. 언뜻 보면 거대한 창고처럼 보인다. 변화와 다양성이 생명인 백남준 작품을 무리없이 담아내는 데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본 것이다. 이 전시장의 핵심공간인 백남준 전시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방문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공간이 또 있다. 석축과 나란하게 설계된 건물의 후면부다. 기존의 석축을 그대로 살리면서 벽면에 부드러운 곡선을 줘 내부 전시실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건물과 자연 사이의 경계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메인로고에서도 백남준 선생의 재치와 유머를 담아내는 형태로 디자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백남준이 54회 생일을 기념해 만든 작품 속에 적혀있는 수식에서 따온 것을 바탕으로 꾸며졌다고 한다.현재 백남준 아트센터에는 'NOW JUMP'라는 이름의 개관 축하 페스티벌이 진행 중이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검은 색 건물을 빨갛게 태운다'는 의미란다. 새 아트센터 무대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이 가득하다.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는 오늘도 예술가 백남준을 이렇게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김남훈 교수 <명지대 건축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