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베데프, '상왕' 푸틴 그림자 벗어나나

"경제대책 부진하다" 비판
FT, 독자노선 움직임 주목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이 지지부진하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겨냥한 듯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제기해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푸틴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행보를 걷고자 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푸틴 총리에게 또 한 차례 일격을 가했다고 12일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외곽의 한 항공기엔진 공장에서 가진 긴급 경제회의에서 "우리는 지금 순간에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당초 예상보다,특히 현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늦게 시행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해 10월 결정한 경제위기 대응프로그램의 단지 30%만이 이행됐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FT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비판이 현재 정부를 이끌고 있는 푸틴 총리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총리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자신은 총리를 맡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구도를 만들어놨다. 이후 푸틴의 '꼭두각시'라는 비아냥을 받아온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몇 차례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좌절됐으며,최근 들어 이 같은 독자노선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공개석상에서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중요한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으며 나는 그 책임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푸틴 총리가 러시아 석탄업체 메첼의 탈세목적 가격담합 혐의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뒤 이 기업의 주가가 30% 넘게 급락하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측근인 이코르 유르겐스 러시아 현대개발연구소장이 "푸틴의 발언으로 600억달러의 손해를 입은 것은 옳지 않다"고 발언,이 때도 둘 사이의 권력 다툼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지난해 8월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 때는 푸틴 총리가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제치고 그루지야 전쟁을 주도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전쟁 기간 중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 머문 반면 푸틴 총리가 야전병원을 방문,군인들을 위로하고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도 참석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과 그루지야 사태를 논의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은 -1.1%를 기록했다고 국영 대외무역은행이 이날 밝혔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