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RBS 국유화 … 美정부도 은행경영 개입 검토

감자 등 주주 피해 불가피 … 씨티ㆍBOA 등 주가 반토막
"오바마, 부시와는 달리 금융사에 손실 분담 요구할 것"
미국과 유럽 주요 은행들의 부실이 또다시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권의 자산 부실화 위험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특히 미 정부가 배드뱅크를 설립,은행의 부실 자산을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2차 구제금융을 투입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퍼진 일부 은행 국유화 가능성은 시장에 공포감을 조성했다.

은행 국유화 공포는 유럽에서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지난 19일 보유 중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우선주 지분을 보통주로 전환,지분율을 58%에서 70%로 높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

실상 국유화를 선언한 셈으로,RBS가 지난해 280억파운드(413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손실을 내는 등 국유화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런던 증시에서 RBS 주가는 하루 사이 무려 67%가 빠졌다. RBS의 국유화 소식은 대서양을 건너 뉴욕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20일 뉴욕 증시의 금융주들도 부진한 실적에다가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 방식 변경 가능성에 따른 국유화 우려가 확산되며 일제히 급락했다. BOA는 대규모 자본을 추가로 확충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28.9% 폭락했으며,씨티그룹 주가도 2달러대로 떨어졌다. 씨티는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보통주 배당금을 주당 16센트에서 1센트로 삭감했다. 상대적으로 우량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JP모건체이스와 웰스파고도 실적 전망 악화 우려로 각각 20.7%,23.8% 급락했다. 이날 S&P500 금융업종 지수는 16% 폭락하며 뉴욕 증시를 무겁게 짓눌렀다.

은행주가 혹독한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우선 자산 부실화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 때문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 및 상업용 모기지(담보대출) 관련 자산가치가 급속히 떨어질 것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게다가 배드뱅크를 설립해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2차 구제금융이 이뤄질 경우 자칫 은행이 국유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지배했다. 실제 쉴라 베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배드뱅크의 모델로 1989년 설립돼 수백개의 주택 · 대부조합(S&L)을 유동화시킨 정리신탁공사(RTC)를 언급했다. 당시 미 정부는 파산 가능성이 큰 S&L을 국유화해 부실자산을 떼내고 클린화된 금융사를 새 주인에게 넘겼다. 이 같은 방안이 2차 구제금융에 적용되면 일부 부실은행이 국유화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 국유화는 곧 기존 보통주의 가치가 급락함을 의미한다. 기존 주주들의 주식은 감자 등을 통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 때는 200여개 은행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국유화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했다. 하지만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2차 구제금융을 추진하면서 일부 은행의 국유화를 단행할 경우 기존 주주들로선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금융사에 350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오바마 정부는 1조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