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주홍글씨' 새긴 경제개혁 법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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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2009년 1월12일 타임지 아시아판은 '아시아 민주주의 위기'라는 특집기사를 싣고 한국의 '국회 폭력사태' 사진을 표지에 게재했다. 기사의 행간에는 한국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 구현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폄훼가 깔려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상은 이렇게 훼손됐다. 국격은 차라리 사치였다. 야권은 쟁점법안을 육탄으로 저지한 것을 전리품인 양 자축하고 있다. 야권은 쟁점법안을 'MB 악법'으로 규정했다. 한 · 미FTA 국회비준과 미디어관련법을 차치하면,'MB 악법'은 모두 경제 관련 법률개정안이다. 이들 개정안은 크게 '출총제 폐지,금산분리 완화,산업은행 민영화'다. 'MB 악법'의 논거는 간명하다. 재벌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MB 악법'이 맞다면,그 대척점에 있는 참여정부 하의 법은 '선법(善法)'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벌의 변칙과 반칙을 척결하겠다"고 공언한 참여정부의 경제성과는 어떠했는가. 참여정부 5년 동안 평균성장률은 '4.36%'로 세계성장률 평균보다 낮았다. 중국 특수와 세계경제의 호황 등 대외여건이 최고조였음을 감안할 때 실망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참여정부는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성장보다 분배에 역점을 두었지만 '지니계수,5분위배율' 등의 지표에서 분배는 현저하게 악화됐다. "기득권을 해체하고 분배의 틀을 다시 짜겠다"던 참여정부의 '화려한 약속'은 그렇게 소득분배 악화로 귀결됐다. 참여정부 동안 '추세적'으로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은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 면에서의 참여정부의 경제실패는 '큰 정부-작은 시장'과 '국가개입주의'로 압축되는 참여정부의 경제패러다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권이 'MB 악법'으로 몰아세운 법령 개정안은,사실은 '큰 정부-작은 시장'을 '큰 시장-작은 정부'로,'국가개입주의'를 '시장규율에 의한 사적자치'로 돌리는 조치다. 과거의 실패를 교정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야권이 '가지 않은 길'(road not taken)로서의 규제완화를 악으로 규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입법'과 '법치'는 다른 개념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을 시도하는 것이 법치는 아니다. 어떤 사회적 합의도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같은 기준에서 규제는 '몸통'을 건드리지 않는 '곁가지'여야 한다. 따라서 출총제와 금산분리로 출자를 제한하고 의결권을 규제하는,즉 사적자치(私的自治)와 사적소유권이라는 몸통을 부정하는 규제는 이미 규제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악의 화신으로서의 재벌'이라는 포퓰리즘에 기초한 규제는 속히 혁파돼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를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어느 대안이 '덜 해로운가'를 판단해야 한다. 외국자본에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휘둘리지 않으려면,경기순환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려면 당연히 후자가 정답이다. 적절한 규제를 가하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을 막을 이유는 없다. '금융회사의 사금고화'와 '동반부실화'는 흘러간 이야기다. 외환위기 당시 한보그룹은 금융계열사를 갖지 않고도 망했다.
재벌을 편든다는 이유로 'MB 악법'이란 '주홍 글씨'를 새긴 그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여정부로 회귀하자는 것인가. 선 · 악에서 벗어난 '선악의 피안(彼岸)'으로 도피할 수는 없다. 선과 악의 치열한 실존 상황에서 무엇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를 당당하게 논쟁할 때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