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韓·中증시가 다른나라보다 먼저 뜨는 이유

한동안 얼어붙었던 글로벌 자금시장에 최근 들어 돈이 돌기 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자주 들린다. 세계 3대 자금시장 가운데 시스템과 시장 기능이 작동된다고 평가받는 런던시장에서는 모기지 사태 이후 최고 수준이었던 리보금리(런던 시중은행간 금리)가 지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금리가 떨어진다는 것은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 4%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대표적 달러 기근 지표인 리보금리와 초단기 대출금리 간 스프레드도 최근에는 2%포인트 이내로 좁혀졌다.

더욱이 모기지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의 주택시장도 돈이 돌기 시작하는 조짐이 감지된다. 한때 연 10%까지 치솟았던 모기지 적용 금리가 일부 우량지역의 경우 4%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2003년 초 적용금리가 4% 내외였던 점을 감안하면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이제 모기지시장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화당국에서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유동성을 지원한다 해서 이론대로 실제로 돈이 도는 것은 아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경제주체들이 앞날을 불안하게 생각해 자금을 움켜쥐면 돈은 돌지 않는 법이다. 세계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조차 최근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고도 정확한 자금 규모를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그런 면에서 글로벌 자금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하는 조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통상 돈이 돌기 시작하면 증시부터 물꼬가 트이면서 주가가 상승한다. 이를 계기로 투자자의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 생산면에서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순으로,수요 면에서는 있는 계층에서 없는 계층 순으로 돈이 돌아가고 멈춰섰던 국민 경제의 순환구조가 재가동하면서 경기가 회복하고 부동산시장도 활기를 되찾게 된다.

최근 글로벌 증시 움직임을 보면 1년 반 넘게 지속돼온 추세적인 주가 하락세는 분명히 멈춘 것 같다. 아직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그날그날 발표되는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정책 등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며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 또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부 국가의 증시는 의외로 강하다. 올 들어 중국 증시는 18% 가깝게 급등했고,한국과 브라질도 각각 8% 넘게 올랐다. 반면 러시아 일본 홍콩 등은 여전히 하락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루블화 가치 급락과 외자 이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주가가 18% 이상 급락함에 따라 1998년 경험했던 모라토리움(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가 다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자금시장에는 변수가 많다. 그 가운데 이번 주 초 발표될 미국의 구제금융법이 당초 의도했던 대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2차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돈줄이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투자은행의 대규모 부실로 촉발됐던 1차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해 은행 부실이 주 원인이 될 2차 글로벌 금융위기는 발생하더라도 돈맥경화의 수위는 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은 투자은행에 비해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총투자 가능금액)이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이른바 '그들만의 거래'를 해왔던 투자은행에 비해 감독기관이 투자 내역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 들어 돈이 풀리고 주가가 상승하는 정도를 보면 정부가 위기 극복 주체로서 확실한 역할을 하고 경제 주체들이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국가일수록 높다는 점이다. 반면 러시아처럼 정치권의 갈등이 심해 신뢰가 떨어지거나,일본 국민처럼 미래를 어둡게 보고 저축을 많이 해 소위 '절약의 역설(saving's paradox)'에 빠져 있는 국가일수록 얼어붙은 돈이 안 풀리고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