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제2의 오원철 안나오나

안현실
미국이 보호무역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몰고 온 당사자가 자신이 궁하다고 전체 게임의 판을 뒤엎는 것과 진배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처럼 무역이 곧 국내경제 문제나 마찬가지인 국가들로서는 가슴이 꽉 막히는 일이다.

오바마라고 자유무역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외치던 공화당이 집권하면 오히려 통상문제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보호무역을 말하던 민주당이 집권하면 예상과 달리 우리를 편하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걸 지금 오바마 행정부에 기대하기엔 미국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다. 미국으로서는 다급한 국내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없다.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이런 흐름은 좋고 싫고를 떠나 한동안 세계 무역환경을 지배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산업의 내공을 쌓기엔 지금이 딱 좋을 수도 있다. 선진국,경쟁국들이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기가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산업전략을 짜고 실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업별 발전전략을 구사했다. 이것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막을 내리고 연구개발,인력 등 기능별 전략이 그 대안으로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이제 정부주도에서 민간자율로 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제적 압력도 컸었다. 선진국들이 후발국들을 견제하기 위해 들이댔던 '국제 규칙'이 그런 것이다. 물론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투자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목표는 거창한데 구체성이 없고 문제해결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취약점도 드러났다. IT(정보기술)산업 이후 뚜렷한 신산업이 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정부가 녹색성장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공허하게 들린다는 얘기가 적지 않고,신성장동력을 들고 나왔지만 반응은 신통치않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부재한 탓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그럴 수도 없다. 말하고 싶은 것은 기능별 전략에 산업별 전략의 장점이라고 할 문제해결 능력을 추가하라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말하는 녹색성장이 구체화되려면 과거 오원철 제2경제수석 시절 중화학공업 육성전략에 버금가는,아니 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전략이 있어야만 한다. 산업발전 전략 자체가 완전히 그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안 된다.

신성장동력도 연구개발투자만의 문제라면 차라리 쉽다. 바이오산업이 안 되는 이유가 단지 연구개발투자의 부족 때문인가. 콘텐츠 투자만 하면 문화산업은 절로 발전하는 것인가. 방통융합은 왜 안 되는가. 곳곳에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이 널려 있다. 이러면 혁신의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정부라면 이런 문제들을 패키지 형태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이 거창하고,목표가 거창하고,전략이 거창하면 뭘 하나. 기업들은 문제를 해결하는,그것도 빨리 해결하는 그런 정부를 원한다. 그게 유능한 정부다. 산업전략을 다시 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