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절망을 뛰어넘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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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독자들에게 드리는 질문 하나. 다음 여섯가지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①2진법 ②19세기 초 찰스 베비지의 계산기계 ③1890년 인구통계용 펀치카드 ④1906년 발명된 삼극진공관 ⑤1910년 버트란드 러셀이 내놓은 상징적 논리규칙 ⑥1918년 개발된 고사포 프로그램.
정답은 디지털 컴퓨터다. 이 모든 지식이나 기술은 1918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정작 첫 디지털 컴퓨터가 나온 해는 1946년이다. 도대체 그 끝을 감지할 수 없는 경제위기 앞에서 많은 기업인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그저 원가를 줄이고 물건 하나 더 팔아서 이겨낼 수 있는 역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의 불확실성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자욱하기만 하다.
당면한 위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위기 이후 출현하게 될 새로운 질서에 편승할 수 있느냐 여부가 더 관건이다. 소니는 아날로그 방식의 브라운관 TV에 집착하다가 LCD와 PDP 진영의 협공에 'TV 황제'자리를 내놓았다. 모토로라는 고객들의 디지털 기술 전환 요구를 묵살하다가 최대 고객인 AT&T를 노키아에 빼앗기고 말았다.
중국 속담 중에 "깊은 구덩이는 두 걸음에 건널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점프를 해서 한번에 건너야지,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되면 구덩이에 발목을 잡힌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덩이를 뛰어넘을 것인가. 물론 정답이 없다. 어떤 경영학 교과서에도 나와있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단절적이고 비약적인 혁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낱말이지만 그 자체가 위기 극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혁신,자기 기만적인 혁신,미래와 괴리된 혁신 등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일찍이 톰 피터스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제보다 조금 더 낫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죽음뿐이다"고 갈파했다. 설마 죽겠냐고? 1965년 매출액 100위권에 속했던 국내 기업 중 지금까지 생존한 기업은 고작 11개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것은 없다. 근대 사회 이후 경제위기는 늘 있어왔고 불황 뒤에는 종전과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호황이 찾아오곤 했다. 1950년대 세계 해운업계는 극심한 불황에 직면해 있었다. 운항속도와 연비 개선이 수익력 확보의 첩경이라고 보았는데,실제 대부분의 비용은 항해 과정이 아니라 정박과 하역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끄집어낸 것은 컨테이너 선박이었다. 이것은 발명품도 아니고 대단한 발견도 아니었다. 하지만 컨테이너를 열차와 트럭에만 실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 하역시간은 단축됐고 운항효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이제 기업들은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당연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외과수술이나 비행술처럼 이미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경영기법을 엉뚱하게 바꾸라는 게 아니다. 무조건 급진적 혁신만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눈에 불을 켜야 한다. 20세기 초 모든 이들이 몰랐지만 사실은 더 일찍 탄생할 수 있었던 디지털 컴퓨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