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은행…中企는 괴로워
입력
수정
"실적 보여줘야하니 3일만 돈 써라"김기문 중기중앙회장
현장서 수집된 경영애로 사례
대출 신청업체 중 38%가 거절당해 72%는 "심사 강화됐다"
지난해 말 시화공단의 한 부품생산업체에 시중은행 지점장이 찾아왔다. 그는 3일간만 돈을 빌려가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억지 대출'을 부탁한 속사정은 금융감독당국에 보고하는 중소기업 대출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외면하다가 자신의 사정에 따라 대출을 강요하는 은행의 부도덕한 행태에 소름이 끼쳤다"며 손사래를 쳤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중소기업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 대토론회'가 11일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렸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이날 금융 판로 수출 인력 벤처 소상공인 등 6개 분야에 걸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사례와 경영 실태 현황을 발표했다. 최근 한 달간 중소기업중앙회 임직원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전국 152개 중소기업을 현장방문해 수집한 내용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주들은 은행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응답했다. 무엇보다 은행권은 △돈이 필요 없는 중소기업에는 대출을 요청한 반면 필요한 중소기업은 외면하고(부도덕) △금리가 내리는데도 변동금리 대출을 9%대의 고정금리로 일방적으로 전환하며(불합리) △외화 부족을 이유로 대출을 거절하는(불충분) 등 이른바 '3불(不) 트렌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회장은 "최근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했던 중소기업 중 38.5%가 거절당했으며 72.6%는 대출심사가 강화됐다고 밝혔다"며 "특히 조사 대상의 78%는 자금사정이 어렵다고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권혁세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실적을 집계할 때 신용도가 떨어지는 업체에 어느 정도 대출이 흘러가는지를 평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토론 발제자로 나선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재생에너지 분야 중심의 부품 · 소재 중소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경기도 죽전의 한 백화점은 외국 브랜드 업체에는 매장 수수료를 받지 않는 데다 인테리어까지 무상으로 해준 반면 국내 중소업체에는 38%의 수수료에다 부가세 10%까지 내도록 강요했다"며 "대형 유통업체들이 멋대로 책정하는 과도한 수수료가 중소 제조업체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영세 중소업체와 소상공인의 몰락을 방지하려면 선진국처럼 지역 금융기관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장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허범도 의원(한나라당), 김용구 의원(자유선진당),박병석 · 우제창 의원(이상 민주당),홍석우 중소기업청장 등과 함께 150여명의 중소기업인이 참석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