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전성시대] 대기업이 뽑은 최강 로펌…형사는 '김앤장' 지재권 '광장' 조세는 '율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문'이라는 형식으로 법무법인(로펌)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규모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변호사를 채용해 사내 법무실(또는 법무팀)을 갖추고 있으나 그래도 대형 사건이나 기업 차원의 서비스는 로펌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신문은 H사,G사,K사,또 다른 H사 등 국내 4개 대기업의 법무팀 관계자들을 만나 국내 로펌의 서비스 수준과 장단점에 대해 가감없이 들어봤다. 로펌 소속 변호사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기업 법무팀 실무급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은 솔직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이들은 로펌의 수임료가 너무 비싸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으며 예전보다는 서비스 수준이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맨파워와 정보력을 갖춘 '김앤장'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들은 최고의 진용을 갖춘 곳으로 모두 김앤장을 꼽았다. 소속 변호사가 가장 많고 인력풀이 다양하다 보니 뛰어난 변호사 비율도 높으며,이는 곧 수준 높은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의견이었다. 경험과 노하우가 충분한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전직 고위관료를 많이 보유한 것도 김앤장의 무기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전직관료가 미팅에 함께 나오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가고 마음이 놓일 정도"라고 고백했다. 따라서 전문성과 정보력에서도 김앤장이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고급 정보를 잘 확인해준다는 것.실제로 김앤장 측에서도 자신들의노하우를 강점으로 내세워 기업들에 홍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 등 무게가 실린 정보가 담긴 의견서때문에 김앤장을 선택하는 거죠.외부에서 오해받지 않으면서 정부 입장을 우회적으로 확인할 때 최고더군요. 가려운데를 긁어준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K사 법무팀장)

김앤장을 선택하는 이유를 '심리적 안정'으로 꼽는 기업도 있었다. 한 실무급은 "설령 나중에 잘못된 결과가 나올지라도 윗선에서는 '김앤장이 패소할 정도면 나머지 로펌들도 다 질 텐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른바 면피성으로 김앤장을 선택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내 변호사는 "특히 기업 오너와 관련된 예민한 사건은 마음 편하게 김앤장에 맡겨버린다"고 말했다.

◆수임료도 중요한 문제서비스 대비 수임료 수준에 대해서는 국내 모든 로펌이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희가 로펌에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가격에 대해 항의할 만한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내는 거죠."(H사)

다른 로펌들도 가격을 비싸게 청구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법무팀의 가장 큰 불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애초에 논의되지 않았던 변호사나 외부의 전문 인력이 추가로 투입돼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예산을 크게 초과하면 의뢰한 입장에선 난감하기 때문이다. "S로펌의 경우가 가장 심한 것 같습니다. 빌링(요금 부과)에 명기된 변호사 이름이 너무 많아 몇 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더군요. "

그러나 로펌 선택시 고려사항에서 가격은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승소율 등 자체적인 데이터와 입소문 등을 통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사내 변호사는 "로펌의 서비스가 만족스럽고 결과가 좋다면야 기업 측에서는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세분야는 '율촌'이 최고

각 로펌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있었다. 기업 법무팀 관계자들은 조세분야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은 로펌은 율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조세 관련 업무는 율촌을 넘버 원으로 쳐준다"며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는 등 율촌 자체적으로도 조세분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내 변호사들은 송무는 태평양,M&A(인수합병)는 세종,지식재산권은 광장에 업무를 많이 맡겼다고 했다. 김앤장의 경우 대체로 모든 분야에서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형사가 강점으로 꼽혔다. 그룹 오너가 얽힌 민감한 사안은 김앤장에 맡기는 기업이 많다고 한다. 로펌들도 부침을 겪는지라 뜨는 로펌,지는 로펌이 나오기도 한다. 모 로펌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서비스가 괜찮았는데 이제는 만족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바른과 지평 · 지성은 최근 떠오르는 로펌이라고 했다.

◆서비스 정신 강화는 과제

"기업이 사건을 의뢰하니까 사실상 우리가 '갑' 아닙니까. 그런데 로펌은 자신들이 '갑'인 양 착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일을 맡기고 로펌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 로펌은 기업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소극적인 정보 제공도 큰 불만으로 꼽혔다.

로펌의 기업자문이 늘어나면서 기업을 상대로 한 서비스에서 보다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법무팀 관계자는 "업무 중 궁금한 것이 있어도 타임차지(시간당 보수금액) 때문에 변호사에게 연락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과 장기 계약을 한 경우 전화문의 등 사소한 것들은 로펌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해 주는 등 융통성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로 법률 서비스시장이 위축되면서 로펌들의 서비스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로펌 소속 변호사들과 기업 법무팀 직원들이 처음 만나 서로 명함을 교환할 경우 예전에는 고개만 까딱거렸던 변호사들이 이제는 허리를 공손하게 굽히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고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