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료산업화' 오해와 진실

이규식
정부가 신성장 동력 17개 과제를 발표하면서 글로벌 헬스 케어를 위시한 의료분야의 3개 과제를 포함시킨 것을 계기로 의료산업화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의료법을 개정해 해외환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게 됨에 따라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설명회가 외국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해외환자 유치가 의료산업화 그 자체인 양 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형수술이나 두발이식 같은 분야에서 외국환자 유치를 의료산업화로 오인하게끔 부산을 떠니 당장 시민단체들은 의료를 상업화시킬 것이냐면서 반기를 들고,심지어 국가인권위마저도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의료산업화란 의료서비스를 위시한 관련 분야의 산업화를 의미한다. 의료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 바이오로 대표되는 BT(생명공학기술)를 위시해 IT(정보기술),NT(나노기술),HT(보건기술)가 발전하게 된다. 즉 의료산업화의 중심에 의료서비스가 놓여 있어 의료서비스 산업이 원천산업의 역할을 한다.

미국은 초일류의 의료기술을 토대로 이제 줄기세포로 대표되는 BT 산업을 발전시켜 산업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산업이 21세기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은 해외환자를 많이 모아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료산업의 발전을 계기로 BT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새로운 성장의 원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의료산업은 BT,IT,NT,HT를 발전시키는 원천산업이 되기 때문에 21세기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점과 해외환자 유치는 의료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쟁력 지표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의료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의료제도는 전국민의료보장을 하루빨리 달성하기 위해 1980년대 전후에 짜여진 틀이다. 1980년대는 기본적 의료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낮은 보험료로 전국민의료보장을 강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의료보장은 모든 국민이 받게 됐지만 의료수가의 통제 등으로 의료서비스는 박리다매형이 되어 병원이나 의원에서 환자들은 자기 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는 2~3분 진료가 일반화돼 있다. 이러한 상태로는 의료를 산업화하고 의료가 BT 산업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서도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 외국 환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외국어 구사 직원 채용에서부터 외국어 안내판 부착에 이르기까지 병원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국내환자를 주로 보는 병원이 이를 갖추려면 새로운 투자 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외국 환자만 전담하는 싱가포르나 상하이의 병원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환자 유치의 실효를 거두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외국 환자를 보기 위해 최신 장비나 기술을 모두 동원할 텐데 이를 내국인 환자에게 적용하게 되면 국민의료비 증가라는 문제가 터진다.

전 국민 의료보장을 조기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의 틀에다 21세기를 대비하는 의료산업화나 해외환자 유치라는 정책을 끼워 넣고자 한다면 제도의 틀과 새로운 정책의 지향점이 달라 의료산업화의 실효성보다 국민의료비만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새로운 의료제도의 틀을 얘기하면 한쪽에선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이념형 반대'에 나선다. 새로운 제도의 틀을 만들 때 전 국민이 강제 가입하는 건강보험의 유지는 물론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나,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오히려 강화시킬 것임을 천명해 의료산업화에 대한 이념형 반대가 설 자리를 잃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