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節米桶만으론 부족한 이유

하영춘 사회부 차장 hayoung@hankyung.com
빵 10개를 벌어 10명이 나눠 먹는 기업이 있다. 갑자기 일감이 줄어 빵 8개밖에 사지 못하게 됐다. 2명을 쫓아내야 하지만 너무한다 싶다. 그래서 벌이가 좋아질 때까지 8개를 10명이 나눠 먹기로 했다.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 job sharing)'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쉽게 말해 고통을 분담하자는 거다. "밥할 때마다 쌀 한 줌씩을 부뚜막의 절미통(節米桶)에 넣어 가난한 사람을 도왔던 우리네 정신의 발로(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다. "일본기업조차 수만명을 해고하는 위기상황에서 흔치 않은 예(월스트리트저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좋은 일이다. 굳이 과거 폭스바겐 등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아도 잡셰어링의 취지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조금 뜯어보면 왠지 찜찜하다. 고통을 나누려면 10명이 먹는 양을 골고루 줄여야 한다. 그렇지만 먹는 양을 줄인 사람은 앞으로 들어올 예비취업자와 임원뿐이다. 나머지는 노조라는 강고한 조직을 배경으로 자기 몫을 줄일수 없다고 완강히 버틴다. 노사화합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산하 단위노조위원장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상급단체에 임금삭감 요구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뭔가 어색한 잡셰어링이 돼 버렸다. 보호막없는 집단에만 고통을 떠넘기는 비겁한 잡셰어링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게 됐다.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다. 실업자가 400만명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빵을 나눠 달라고 난리인 이들을 마냥 모른 척 할 수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한시적 빵나누기다. 다름아닌 청년인턴이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들에 채용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건 어떻게 보면 무리다. 기업입장에선 오히려 구조조정이 절박한 시점이다. 이런 기업사정과 청년실업문제를 두루 감안해서 만들어진 게 청년인턴제다. 기업들도 정규직 채용보다 부담이 덜한 청년인턴을 늘리는 데 열심이다. 그렇지만 청년인턴의 한계는 분명하다. 2~10개월짜리 임시직이다.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거대한 실업자군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뭐 그래도 청년인턴은 괜찮은 대안이다. 더 이상한 것은 임금삭감을 무조건 잡셰어링으로 미화하는 야릇한 분위기다. 물론 임금동결이나 삭감을 선언하는 노조에 고용보장으로 화답하는 사측의 태도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일자리 나누기는 모른 척 한 채 임금삭감만 밀어붙이는 일부 기업조차 잡셰어링 우수기업으로 소개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잡셰어링이 현실적 위기극복 방안이라는 데 토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고통의 분담'이 아니라 '고통의 이연'이라고 말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자리 나누기 못지않게 일자리 만들기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는 거다. 그저 단기적 실업대란을 막는 데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을 게 아니다. 창업을 유도하고,사회적 일자리를 만들며,청년인턴제를 상설화하는 한편,고비용 노동운동구조를 깨는 데도 돈을 투자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당위는 당위다. 만일 1년 후에도 벌이가 좋아지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 이미 먹는 양을 줄여 놨으므로 계속해서 적게 먹자고 강권할 것인가. '백만 일자리 창출(밀리언 잡 · million job) 운동'이 지속돼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