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독이고(讀而考)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가 노상 내뱉는 대사다. 하우스는 한쪽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마약성 진통제 '바이코딘'을 입에 달고 사는가 하면 병원 원장과 동료들에게 툭하면 독설을 퍼붓는 괴팍하고 고약한 진단 전문의다.

일반적 잣대의 조직 구성원으로선 0점에 가까운 그가 살아남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 덕분이다. 그는 의학에 능통한 건 물론 각종 외국어를 구사하고 온갖 부문의 해박한 지식으로 환자들의 마음 곳곳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의식 ·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이는 환자도 다르지 않다는 게 하우스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려면 환자가 깜빡 잊었거나 감추는 것까지 알아내야 하는데 그러자면 그의 일상과 행동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말하지 않은 온갖 것을 유추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TV드라마,그것도 별나디 별난 미국 의사를 둘러싼 세계를 다룬 것이니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의술(醫術)은 곧 인술(人術)이고 훌륭한 인술은 단순한 의학 지식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풀어놓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경희대 한의대가 예과 2년 동안 고전(古典) 100권 중 최소 20권은 읽도록 하는 '독서 지도 프로그램'을 도입,올해 신입생들에게 '독이고(讀而考 · 읽고 생각하다)'라는 독서노트를 나눠줬다고 한다. 매 학기 독후감을 내고 평가받은 다음 2학년 말 최종심사를 통과해야 본과에 진입시킨다는 것이다. 목록을 정해놓고 억지로 읽게 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아는 체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고 하듯 막상 펼치면 수면제가 따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제로라도 열심히 읽다 보면 뜻밖의 재미나 감동을 찾아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사색은 사려 깊은 사람,논술은 확실한 사람을 만든다"(벤저민 프랭클린)고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족보를 찾아 헤매지 않고 스스로 읽고 생각하면서 독이고를 채워가다 보면 생각의 폭은 넓어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건 물론 만일의 경우에 대처하는 법까지 익히게 될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