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위기불감증 걸린 자동차 노조

조재길 산업부 기자 road@hankyung.com
정부가 국민 혈세를 동원해 위기에 처한 자동차업계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지난 26일.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는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월 기본급을 4.9%(8만7709원) 인상하고 올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며 신차종의 국내 우선 생산을 명문화하라는 게 골자다. 같은 날 기아자동차 노조는 '생계비 부족분'이란 명목의 특별 성과급을 달라며 사측을 압박했다. 올해 초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 노조는 사측 임원 대부분이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날 임단협 1차 상견례를 강행했다.

정부가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논란이나 한 · EU(유럽연합)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미칠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동차산업 지원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분명하다. 대량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160만여 명.전체 고용의 10.4%를 차지한다. 이러다보니 정부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만큼 노조도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에 앞장설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현대 · 기아차 등의 글로벌 경쟁사들은 이미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GM 등 미국 '빅3'는 물론이고 폭스바겐 BMW와 같은 견실한 유럽 기업들도 수천~수만 명을 감원하고 있다. 내부 유보금을 160조원이나 확보하고 있는 일본 도요타 역시 감원 및 임금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자동차업계 노사의 선제적 노력이 없으면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자동차 노조가 한 발 양보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차 노조를 지목하기도 했다. 현대차 국내공장의 평균 임금은 미국 앨라바마 공장보다 높지만 생산성은 훨씬 떨어진다는 게 이 대통령의 지적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올해는 위기이자 기회다. 일부 업체의 경우 존폐 기로에 놓여 있지만,노사 상생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노조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실망 그 자체다. 과연 이런 노조를 세금으로 먹여 살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있다. 노조는 과연 위기의 실상이나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