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일식당엔 있고 한식당엔 없는 것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jkj@hankyung.com
라멘집에도 전통ㆍ역사 깃들어
문화에 스토리 더해야 감동줘
지난해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엑스포)의 주제는 '물과 지속 가능한 개발'이었다. 세계 104개국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서 일본관은 '우키요에(浮世繪,전통판화)'의 영상화를 통해 선조들의 치수 솜씨와 함께 일본의 삶과 자연을 보여줬다. 팸플릿엔 우키요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옛그림을 통해 일본의 전통과 현대,문화와 산업을 함께 전달한 셈이다. 바로 위층에 마련된 일식당은 각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바글바글했다. 일식의 인기를 입증하는 현장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선 시민들이 도심에 늘어나는 일본 라멘집들 때문에 빵도 사기 어렵다며 시(市)에 청원을 냈다는 마당이다. 국내에도 스시전문점은 물론 골목골목 이자카야(선술집)와 라멘 전문점까지 증가한다. 반면 한식당은 세계 어디에서도 반듯한 곳을 찾기 어렵다. 왜 이런가. 일식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만든 요인은 다양할 것이다. 서방세계에 일찌감치 진출한 덕도 있을 테고 막강한 경제력도 영향력을 발휘했을 게 틀림없다.

스시라는 특유의 메뉴와 놀라운 친절도 한 몫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일식당엔 이런 것들 외에 한식당에 없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문화다. 일식당엔 일본이 있다. 우키요에는 물론 각종 일본 인형,가면극 노(能)의 가면,스모 대진표까지 일본의 전통과 역사 풍물을 전하는 모든 요소들이 있다.

우키요에는 14~19세기 일본 서민생활을 다룬 판화다. 18세기 중후반이 황금기로 무사와 상인 등을 배경으로 한 사회풍속과 일상,후지산 같은 명승지 풍경을 많이 다뤘다. 20세기 초 사진과 인쇄술 발달로 쇠퇴한 뒤에도 현대 우키요에 장인들이 옛 작품의 복각화를 제작함으로써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전통연극 가부키(歌舞伎)와 함께 우키요에를 일본을 알리는 콘텐츠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식당엔 한국이 없다. 한정식집이라고 해봐야 몇몇 집에서 한국화나 반닫이 같은 목기를 볼 수 있을 뿐 다른 곳에선 한식당을 상징하는 그 무엇도 찾기 어렵다. 국내가 이러니 해외는 말할 것도 없다.

조선조의 풍속화나 민화(民畵)가 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민화는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대담한 구성으로 한국적 미를 드러낸다. 종류 또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작호도(鵲虎圖) · 십장생도(十長生圖) · 산수도 · 풍속도 · 고사도(故事圖) · 문자도 · 책가도(冊架圖)까지.

컴퓨터가 제아무리 발달해도 할 수 없는 것 세 가지는 '농담과 울음,그리고 요리'라고 한다. 어느 나라 사람 할 것 없이 외식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20년 뒤엔 세계 외식시장 규모가 자동차 시장과 IT(정보기술)산업 시장을 합친 것보다 커지리라는 추정도 나온다. 세계 각국이 자국(自國) 요리 전파에 힘쓰는 이유다. 우리 정부 역시 한식 세계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10년 뒤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한식 세계화 추진 전략'도 내놨다. 외식산업진흥법을 제정하고 식품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하고,해외 유명 요리학교에 한식 강좌 개설을 추진하는 등 온갖 방안이 망라됐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대표메뉴 선정과 표준식단 및 표준 레시피 작성, 해외의 한식당 확대 등.그러나 이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한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음식과 공간 모두에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담아내는 일이다.

누가 봐도 한눈에 한식당임을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아이콘 설정 또한 필수다. 문화강국임을 입증할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식당엔 있고 한식당에 없는 친절과 이야기도 살려내야 한다. 다른 상품처럼 외식비용 역시 브랜드에 따른 심리적 만족감과 이색적인 경험에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