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밀레니엄 포럼] 진동수 금융위위원장 "대기업 구조조정, 은행이 확실하게 나서야"

진동수 금융위원장에게 듣는다
금융회사 자산시가 평가제는 시기상조
은행, 자본확충펀드ㆍ증자로 위기 벗어나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3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대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특히 "채권금융회사가 주도해 확실하게 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은행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너무나 많은 반면교사가 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채찍을 들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이효익 성균관대 교수=정부의 실물경제 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아직 냉랭하다. 은행의 자금 공급 규모도 공적 보증을 확대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금리 인하 노력도 미흡하다. ▶진 위원장=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금융회사는 부실 발생을 꺼리기 때문에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인책도 있어야 한다. 지난 2월 중기대출 보증 확대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과감한 조치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실물경제에 들어가는 자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으로부터 중기의 체감 온도가 나아졌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실물체감도가 낮은 부분은 다각적으로 노력해 보완하겠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금융위기가 언제쯤 해소될 것으로 보나.

▶진 위원장='오바마를 위해 기도합시다'가 내 답이다. 위기의 발원지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진정 국면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 문제의 근원인 주택담보대출(모기지)까지 진도가 안 나갔다. 자동차 대출이나 소비자 신용 등 여러가지 문제도 남아 있다. 미국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정책 대응을 해줘야 한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은행의 자본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구상 중인 금융안정기금을 예금보험공사가 아닌 정책금융공사(산업은행에서 분리되는 기관)에 두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 위원장=예보는 외환위기 당시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측면이 있다. 예보의 지원을 받는다면 일반인이 부실 기관으로 단정하기 쉽다. 금융안정기금은 실제 조성돼 쓸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주주가 분산돼 있고 상장이 된 은행들은 자본확충펀드와 자체 증자를 통해 정부의 재정 부담 없이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금융안정기금은 일종의 안전장치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정부,시장,고객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수익성과 건전성 유지라는 갈등적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 경영하는 게 쉽지 않다. ▶진 위원장=은행들이 매우 어렵다. 순이자 마진이 줄고 부실 채권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출도 늘리고 건전성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실물경제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의 접점을 찾기가 고민스럽다.

▶권기찬 웨어펀인터내셔널 회장=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연 2%로 떨어졌지만 실제 은행에서 빌리는 돈의 금리는 그대로다.

▶진 위원장=대출금리는 자본조달비용에 적정 마진을 붙여 결정한다. 기준금리가 많이 떨어졌지만 일부 자금은 그전에 고금리 특판예금 등으로 조달됐다.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금리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장종현 부즈앤컴퍼니 코리아 사장=은행 건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보유 자산에 대한 시가평가를 시행하는 방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 위원장=시가평가제(Mark To Market,보유 자산을 시가대로 평가하는 것)를 적용할 경우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회계 투명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이 그 정도까지 진도를 나가야 할지는 회의적이라고 본다.

▶김지수 KAIST 교수=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재정부 등과 협의해 금융 인력을 양성할 계획은 없나.

▶진 위원장=정부가 금융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고문=각국이 경쟁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는데 향후 인플레와 재정적자에 대한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 독감이 유행한다고 우리가 필요도 없는 항생제를 맞아야 하느냐.

▶진 위원장=신보 · 기보의 보증 확대가 일부 무리였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 1월까지 상황에서 그나마 이 정도의 조치로 중소기업 자금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건설 · 조선업에 이어 대기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원칙과 방향,규모에 대해 언급해달라.

▶진 위원장=당면한 어려운 숙제다. 지난 몇 년 동안 대기업들이 세월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하에 무리한 부분이 있다. (어딘지) 얘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적절한 자구 노력을 하는 것이 기업,은행,국민경제 전체적으로 피할 수 없는 손실을 최소화하고,중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이 된다는 것은 외환위기 대기업 사례에서 절절히 경험했다. 채권금융회사가 주도해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은행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결국 구조조정의 당사자인 기업이 은행과 같이 논의해서 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두형 증권금융 사장=국민은 과거처럼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처리를 기대하고 있다. ▶진 위원장=시장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금융회사의 단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어렵다. 부실을 빨리빨리 털어내는 것이 금융회사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정책을 끌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정리=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