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중국의 보이지 않는 미소

베이징=조주현 forest@hankyung.com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떨고 있다. 고통스럽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수출이 안 돼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취직을 못한 청년 백수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의 폭탄이 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중국은 이렇게 찌푸리고 있지만,보이지 않는 중국은 웃고 있다. 금융위기는 중국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놨다.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던 '엉클샘'(미국)의 얼굴을 '용'(중국)의 발톱은 사정없이 할퀴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달러를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밀어내려는 노골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르면 6월부터 위안화로 무역결제를 개시해 국제화폐로서의 달러를 적극 공격할 태세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6개 나라와 체결된 통화스와프 계약은 국제사회에 '위안화 커넥션'을 만들어냈다. 아시아와 동유럽(벨라루시),그리고 남미(아르헨티나)까지 뻗친 위안화 커넥션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맘에 안 드는 나라는 빼버리고 배짱이 맞는 나라를 선택해 대규모 구매단을 보내기도 했다. 금융위기는 중국인들에게 중화의 자부심을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중국이 세계의 리더가 되기엔 아직 결격 사유가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통제된 사회,빈부 격차,허약한 산업기반 등은 글로벌 리더 중국에 대한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러나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고,오늘날의 총칼이 자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인 것도 틀림없다.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중국의 오랜 전통인 도광양회(韜光養晦 · 자신의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가 종언을 고했음을 알려준다. 도광양회는 덩샤오핑이 개혁 · 개방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50년간 앞에 나서지말고 힘을 기르라고 내린 중국의 외교지침이다. 그래서 중국은 1993년 미 군함이 중국 화물선에 화학무기 원료가 실렸다며 공해상에 한 달간이나 발을 묶어놓고 검문했던 은하호 사건이나,2002년 미국이 장쩌민 주석의 전용비행기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때와 같은 굴욕을 참으며 조용히 지나갔었는지 모른다. 1999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거절당했을 때나,유고의 중국 대사관에 미국의 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중국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말을 삼켰었다.

그러나 이젠 대국외교로 전환,중국 중심의 세계를 꿈꾸는 '중화의 행보'를 망설임없이 걷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와중에 세계를 구할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중국 구세론(救世論)이 서방세계에서 먼저 제기되는 판이니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중국의 비상(飛上)을 바라보며 한국을 반추해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기도 하거니와 한국의 교역대상 1위국가라는 점에서 중국은 한국의 발전전략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을 아직까지 저임금의 생산기지였다가 이젠 임금이 올라 그마저도 활용하기 어렵게 된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중국이 불량식품이나 만든다고 내려다보고,한국민들이 엉뚱한 우월심만을 키우고 있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