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는 骨氣를 뿜고, 산세는 칼날 같구나…
입력
수정
간송미술관, 겸재 진경산수 '박연폭포'등 120여점 전시겸재 정선(1676~1759년)은 관념적인 산수화가 판치던 조선시대에 한국적 미감을 반영한 '진경산수'화풍을 개척한 거목이다. 겸재로부터 시작된 조선시대 '진경산수'는 동 시대에 활동한 현재 심사정(1707~1769년),관아재 조영석(1686~1761년),원교 이광사(1705~1777년) 등을 거쳐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이당 김은호,청전 이상범으로 이어졌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올해로 탄신 333주년,서거 250주년을 맞는 겸재와 심사정 이광사 강희언 김득신 신윤복 이인상 김윤겸 이인문 등 쟁쟁한 조선시대 후기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겸재화파전'을 17일부터 31일까지 연다.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원류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전시로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수집한 그림 중 겸재의 대표작 '박생연(朴生淵 · 박연폭포)''청풍계(淸風溪)''행호관어(杏湖觀漁)''압구정''경교명승첩' 등 절정기의 산수화 70여점을 포함해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 임득명 이광사 김윤겸의 작품 2~10점씩 모두 120여점이 전시된다. 겸재의 생애와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발전과정,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
겸재의 대표작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박생연(박연폭포)'.5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이 작품은 보기만해도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할 정도의 사실적 표현이 관람객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북한 개성 대흥동에 있는 명승 박연폭포의 비류직하(飛流直下) 모습을 실제보다 두 배 정도 늘려 그려서인지 박진감이 넘치고 골기(骨氣)와 신명이 느껴진다. 겸재 나이 65~70세 사이에 그린 이 작품은 '인왕제색도''금강전도'와 함께 그의 3대 명작으로 꼽힌다.
현재 서울 청운동 인왕산 동쪽 기슭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청풍계' 역시 겸재가 64세에 그린 득의작(得意作)으로 진경산수의 실체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험준한 바위를 도끼로 찍어내리 듯이 그어 절벽을 묘사한 부벽찰법,인왕산 특유의 잘생긴 백색 암벽들을 음화처럼 장쾌하게 표현한 묵찰법,암괴가 가지는 막중한 질감을 포착해 덧칠하는 찰법 등 마음껏 휘두른 겸재의 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겸재 나이 72세에 내외금강산 진경 21폭을 그린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의 일부 작품도 관람객을 반길 예정이다. 특히 이 화첩은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아궁이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간송 선생의 눈에 띄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됐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또 가을철 금강산 풍경을 한데 합쳐 살펴본다는 뜻이 담긴 '풍악내산총람',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를 그린 '압구정',닭이나 고양이,곤충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초충도'시리즈,말년에 추상성이 돋보인 '장동팔경첩' 등도 수묵의 구사나 필력이 더욱 활달해져 화면에 생기를 부여함으로써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학예연구실장은 "겸재는 중국 남종화를 조선식으로 개척한 중요한 화성(畵聖)"이라며 "주역에 능통한 그는 암산절벽은 필법으로,토산수림은 묵법으로 처리해 산과 바위가 마주보게하는 음양 대비의 화면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겸재서거 250주년을 맞아 30년간 연구해온 결과물을 올해 안에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원고지 3500여장 분량의 저술작업도 마쳤다"고 덧붙였다. 관람료 무료.(02)762-044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