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철갑 기마병이 삼국 통일의 원동력

●1600년 전 重裝騎兵 무덤 발굴 의미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의 고구려 고분 삼실총 벽화에는 온 몸에 비늘 모양의 철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가 비늘갑옷을 씌운 말을 탄 채 창을 던지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처럼 철제갑옷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重裝騎兵) 또는 개마무사(鎧馬武士)는 지안현의 서안 12호동이나 쌍영총,안악3호분 등의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하지만 그 실체가 확인된 적은 없다. 2일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경주 황오동 고분군(사적 제41호) 내 쪽샘지구의 신라 중장기병 무덤은 고구려 고분 벽화로만 짐작해온 철갑(鐵甲)기병과 개마무사의 원형을 확인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라 장수의 군장품이 풀세트로 발굴된 셈이다.

중장기병 또는 철갑기병,개마무사는 최강의 공격력으로 적진을 돌파했던 주역으로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 개척이나 4~5세기 신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중심 부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 고분으로만 짐작했던 중장기병의 실체가 신라에서 발견됨으로써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건무 문화재청장)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중장기병의 실체가 확인된 곳은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집단묘역으로 알려진 쪽샘지구 53호분 동쪽의 'C10호묘'로 명명된 주부곽식(主副槨式) 목곽묘다. 주부곽식 목곽묘란 하나의 봉분 속에 무덤의 주인공이 묻히는 주곽과 부장품을 넣는 부곽이 따로 있는 무덤 구조로,C10호분의 주곽에선 무사용 찰갑과 말을 위한 마갑,무기류 등이,부곽에선 마구(馬具) 부속품과 항아리 등의 토기류가 다량 수습됐다.

주곽은 가로 440㎝,세로 220㎝의 구덩이에 가로 380㎝,세로 160㎝ 크기의 목곽을 넣고 목곽 바닥에 말갑옷을 목 · 가슴,몸통,엉덩이의 세 부분으로 정연하게 깔아놓았다. 또 말갑옷 몸통 위에 무덤의 주인공인 장수의 찰갑 중 가슴가리개(흉갑) · 등가리개(배갑)를 펼쳐 깔았으며 둘을 옆구리에서 여미도록 돼 있다.

배갑 아래 쪽에는 다리를 보호하는 대퇴갑으로 추정되는 작은 철편들이 연결돼 있고,굽은 형태의 긴 철판을 연결해 만든 투구와 목,팔,어깨를 보호하는 찰갑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작은 철편들도 무더기로 출토됐다. 또 장수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환두대도(둥근고리긴자루긴칼)와 작은 칼의 손잡이를 사슴뿔로 만든 녹각병도자,쇠창과 쇠도끼 등의 무기류와 높은 다리가 달린 술잔인 고배(高杯)와 장경호(목긴항아리) 등도 주곽에서 발굴됐다. 부곽에서는 말의 얼굴가리개(馬胄)와 안장틀,등자,재갈,행엽(말의 치레거리) 등 마구 부속품들이 나왔다. 또 대호(큰항아리)와 네귀달린 항아리(유개사이부호),단경호(목짧은 항아리) 등도 양호한 상태로 출토됐다. 연구소는 고배 등 토기의 형식으로 봐 5세기 전반께의 무덤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말갑옷이나 말 얼굴가리개 및 관련 부속 도구들이 단편적으로 소량만 출토돼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말갑옷의 경우 1992년 함안 마갑총에서 출토된 적이 있으나 이번 쪽샘지구 출토품이 훨씬 양호하고 완전한 상태여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갑옷의 경우 삼각형이나 장방형의 큰 철판으로 만든 판갑(板甲)은 종종 출토됐으나 찰갑은 일부 부속구만 출토돼 그 원형은 고구려 고분 벽화로만 짐작해왔다. 따라서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출토유물에 대한 보존 처리가 끝나면 신라 기마병 혹은 기마장군의 전모가 생생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