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머피의 법칙‥어쩌다 한번 띄운 시세판, 등뒤엔 '저승사자' 김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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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은 일찍 출근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다. 물론 가끔은 과음으로 늦잠을 잔다. 이런 날이면 부리나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럴 때마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다.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탔는데 현금이 없다. 다시 내려 겨우 카드택시를 잡았지만 그날 따라 길은 왜 그리 막히는지.간신히 회사에 도착했지만 지각을 면할 수 없다. 평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부장이 하필 회의를 주재하고 있을 게 뭐람."평소에는 늦지 않는데요"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까 고민하는 순간 "자넨 왜 이 모양인가"라는 호통이 떨어진다.
'불행한 일은 연거푸 일어난다'는 말은 직장생활에서도 통용된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라며 '머피의 법칙' 앞에서 한숨 짓는 김 과장,이 대리가 의외로 많다. ◆휴가 때마다 왜 급한 일이 생길까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히 쉬고 싶다'는 게 직장인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자애롭지 않다. 어떻게 된 회사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마다 일거리를 던져준다. 금요일 저녁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과 저녁 약속을 잡아놓으면 야근할 일이 생긴다. 휴가를 앞두고는 돌발 사고가 터진다. 마케팅 대행사에 근무하는 윤성환 대리(32)는 휴가철마다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휴가를 간 적이 별로 없다. 지난해 휴가 때는 회사 일정을 꼼꼼히 체크한 뒤 가장 한가할 때 휴가 계획을 세웠다. 고객사 제품의 론칭(출시) 행사가 계획돼 있었지만 두 달이 남아 있었다. 휴가를 갔다온 뒤 준비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웬걸.막 휴가원을 제출하려던 순간 고객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론칭행사를 한 달 앞당겨야겠어요. "
윤 대리는 얼마 전 딱 이틀만 휴가를 쓰려 했다.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탓이다. 그러나 어찌 알았는지 휴가를 계획한 그 이틀 동안 지방에 출장갈 일이 생겼다. 그는 "휴가를 잡을 때마다 반드시 일이 생긴다"며 "휴가를 가지 못할 팔자인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상사의 압제에서 탈출해 보려 했지만…금융회사 영업부 소속이던 이영길 대리(34)는 최근 정기인사에서 지방 근무를 지원했다. 직속 상사인 K부장과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K부장의 '압제'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친 게 벌써 4년째.다른 부서로 전출을 희망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그래서 모두가 기피하는 지방근무를 자원했다.
공도 들였다. 인사부 후배에게 '협박'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마침내 인사부 후배에게서 "잘 될 것 같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짜릿함에 빠졌던 것은 불과 3일.이 대리가 희망지로 발령난 건 맞았다. 그런데 실적 부진으로 K부장도 이 대리와 같은 지방으로 함께 발령나고 말았다. K부장을 피하려 지방근무를 자원했는데 K부장을 다시 모시게 된 걸 이 대리는 '운명'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A은행 영업지원부의 오 과장(39)은 상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려다 화를 입었다. 회의 때 부장으로부터 "머저리 같은 놈"이라는 수모를 당한 날이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오 과장은 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두고 귀가한 부장의 차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오 과장은 '통쾌함' 대신 '비통함'을 맛 봐야 했다. 흠집이 난 차는 다름아닌 자신의 차였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자신의 차와 부장 차가 같은 브랜드라는 걸 잊고 본인의 차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한 번 딴전부린 게 딱 걸리다니
대형 유통회사에 다니는 정 과장(38)은 업무 시간에 딴전을 피우는 직원들을 한심스럽게 여긴다. 부하직원들이 일과 시간에 블로그나 미니홈피 관리하는 것을 보면 박살을 내놓는다. 그런 그가 최근 한 번의 실수로 근무 태만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정 과장은 북한 핵 관련 뉴스를 보다가 본인이 투자한 주식은 괜찮을까 궁금해서 잠깐 시세표를 띄웠다. 그 순간 담당 상무가 들어와 정 과장의 컴퓨터 화면을 봤다. 상무는 "일과시간에 주식 투자하는 게 유행이라더니 우리 회사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만…"이라며 혀를 끌끌 차고 돌아갔다.
더욱 황당한 일은 사흘 뒤에 일어났다. 정 과장은 컴퓨터에 깔아놓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아예 지워버리기 위해 컴퓨터 화면을 켜고 HTS를 띄웠다. 등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 보니 직속 상사인 '독사 부장'이 서 있었던 것.부장은 "당신 때문에 임원회의에서 일과시간에 주식 투자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몰아 세웠다.
정 과장은 "남들은 하루에 수도 없이 한눈 팔고도 걸리지 않는데 딱 두 번 잘못한 게 상사들의 눈에 띄었다"며 머피의 법칙에 고개를 흔들었다.
◆메신저도 도와주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메신저 창도 직장인들을 아찔하게 만든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40)은 노트북을 이용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어둑한 회의실에서 담당 임원을 비롯해 전 팀원이 빔 프로젝트를 통해 김 과장의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는 순간이었다. 한 친구가 갑자기 메신저로 "너 회사 아직 안 때려쳤냐?"고 물어 왔다. 무선랜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게 화근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김 과장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했지만,이미 상사의 얼굴은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건설사에 다니는 박씨(33)는 메신저로 회사 동기와 대화를 나누다 봉변을 당했다. 마우스 클릭을 잘못해 팀장을 씹는 내용의 쪽지가 L과장에게 전달된 것.동기와 L과장이 메신저에 '우리 회사'라는 같은 그룹으로 묶여 있어 발생한 문제였다.
◆'살다 보니 이럴 수도'치부할 수밖에
식품업체 K사의 최 과장(37)은 항상 깔끔한 정장패션을 고집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5년 동안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것이 딱 두 번일 정도였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런 것일까.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두 번 모두 경을 쳤다. 한 번은 사장이 갑자기 호출했고,다른 한 번은 반드시 가야 할 상가가 생겨 당황해야 했다.
머피의 법칙이 통용되는 상황은 의외로 많다. 화장하지 않은 채 머리도 감지 않고 출근한 날,갑자기 중요한 외부 미팅이 생기거나 우연히 옛 남자친구를 만난다. 새 넥타이를 매고 가면 어김없이 국물 자국으로 신고식을 치른다. 새 양복은 번번이 튀어나온 못과 조우한다. 큰맘 먹고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고기먹는 회식이 잡힌다. 치아교정기를 낀 날부터 안 들어오던 소개팅이 물밀듯 몰려온다. 하루에 한 통도 안 오던 휴대폰은 화장실만 가면 불이 나고,애인과 있을 때마다 보기 민망한 음란문자가 집중 포화를 이룬다. 이럴 때마다 '항상 왜 나만 이럴까'라고 자책하는 게 김 과장,이 대리다. 하지만 이런 일은 나에게만 생기는 게 아니다.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은 옆자리 동료도 비슷한 경험으로 속앓이를 해봤다. '살다 보니 별…'하고 넘기는 게 상책이다.
정인설/이관우/이정호/이상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