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직선거 출마 교수 휴직 허용

"폴리페서 인정" vs "학습권 침해" 논란 재점화
앞으로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서울대 교수들은 학기 시작 전에 휴직계만 제출하면 학기 중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15일 서울대에 따르면 서울대 규정심의위원회 소위원회는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휴직규정 초안을 통과시켰다. 휴직규정 초안에 따르면 서울대는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교수에게 1회에 한해 휴직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선거운동 기간이 포함된 학기가 시작하기 전 휴직계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학과 · 단과대 등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당선될 때까지 학교에 적을 걸어두고 여러 번 선거에 출마하다가 당선된 후 휴직규정을 활용해 무기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 규정은 또 장관 등 임명직 공무원에 임용될 경우에는 학기 중에라도 휴직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폴리페서(정치참여 지향 교수)'에 대한 찬반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폴리페서는 연구와 강의보다는 정치 활동에만 관심이 많은 교수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Politics(정치)와 Professor(교수)의 합성어다.

서울대가 이 같은 규정을 만든 이유는 그동안 교수의 공직 선거 출마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교수들이 학기 중에 강의를 중단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등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폴리페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연수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40)는 강의 중에 경기 남양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 김 교수는 선거 출마를 휴직 사유로 인정하는 규정이 없어 '육아 휴직서'를 제출하는 편법을 사용했다가 인정되지 않자 휴직도 하지 않고 선거에 나섰다. 김 교수가 하던 수업에는 시간강사가 임시로 투입됐고 학생들은 "수업이 엉망이 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시민 · 사회단체들과 서울대 학생들,일부 교수들은 교수가 공직 선거에 출마할 경우 교수직을 사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내용은 결국 초안에서 제외됐다. 김명환 서울대 교무처장은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공무원법상 보장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어서 위법 · 위헌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불만을 품은 교수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백전백패할 것이 분명해 차선책으로 선거 출마를 위한 휴직을 양성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초안은 도입 취지와 달리 자칫 '폴리페서'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합법적으로 학기 중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면 더 많은 교수들이 정치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김연수 교수(낙선)를 비롯해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교수는 모두 40여명에 이른다. 이 중 20명은 당선돼 강의를 중단하고 정치에 입문했다. 서울대가 초안에서 선출직 공무원과 달리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나 시 · 도 지방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에는 휴직을 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도 논란거리다. 서울대는 또 초안에 휴직자가 생겨도 해당 학과와 학부에서 연구년(안식년)을 쓰는 교수 수를 줄이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았다. 초안은 이와 함께 영리법인 근무로 인한 휴직은 원칙적으로 불허하되,총장이 재량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대 학생과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진섭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전기공학과 4학년)은 "후학 양성을 우선으로 해야 할 교수의 본분을 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에 만들어진 초안은 서울대 규정심의위원회 본회의와 학장회의,평의회 의결 등을 거쳐 오는 2학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