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로비에 휘둘린 월가 금융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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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금융위기가 최근 급속히 진정되는 분위기다. 정부 구제금융으로 연명했던 월가 대형 은행들이 유상증자는 물론 정부 보증없이도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하지만 또다른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금융 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끝없는 논쟁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 감독의 일원화 문제는 사실상 물건너간 분위기다. 시스템 리스크를 막을 수 있도록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능을 확대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상품선물위원회도 권한을 강화하는 쪽에서 타협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사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감독기관을 선택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게 된다. 적절한 감독부재로 과도하게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는 AIG 사태가 다시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 세계 금융사와 파생상품 거래를 해온 AIG는 그동안 저축은행감독청(OTS)의 감독을 받아왔다. 금융위기의 주범인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도 논의만 무성하다. 파생상품도 거래소에서 투명하게 거래되고 상응하는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렇게 되면 시장이 죽을 것이란 월가 금융사의 협박에 묻혀버렸다. 파생상품 시장을 주도해 온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9개 대형 월가 금융사들은 정치권과 정부에서 파생상품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자 작년 11월 'CDS(신용부도스와프) 딜러 컨소시엄'이란 로비기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워싱턴의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경쟁 관계이지만 이해가 맞으면 연대를 모색해 공동의 이익을 쫓는 게 바로 월가 금융사들이다.
파산법 개편도 사실상 무산시켰다. 미 의회와 연방 정부는 파산법원이 담보주택의 시장가치와 동일한 수준까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원금을 낮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cramdown)를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월가 금융사의 로비에 제동이 걸렸다. 월가 금융사들은 그렇게 되면 모기지 금리를 올리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주택시장 안정을 저해할 것이란 논리를 폈다. 예전에는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던 대형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논의도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월가 금융사들은 단순히 규제 강화에 맞서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기존 규제를 없애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시가평가회계(mark-to-market) 규칙 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역시 은행들은 신용조합 보험사와 연대해 '페어밸류콜리션(Fair Value Coalition)'을 구성해 의회를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활동을 펼쳤다. 미 은행연합회(ABA)는 회계방식 개편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해당 위원회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바니 프랭크 공화당 의원은 3월 말 8500달러를 받았다. 결국 의회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미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는 보유자산 부실화에 따른 금융사의 평가손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둘러 회계제도를 바꿨다. 취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월가 금융사의 부도덕성을 질타해 온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과 추진력이 월가의 막강한 로비에 막혀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이익원 iklee@hankyung.com
하지만 또다른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금융 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끝없는 논쟁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여러 곳으로 분산된 감독의 일원화 문제는 사실상 물건너간 분위기다. 시스템 리스크를 막을 수 있도록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능을 확대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상품선물위원회도 권한을 강화하는 쪽에서 타협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사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감독기관을 선택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게 된다. 적절한 감독부재로 과도하게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는 AIG 사태가 다시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 세계 금융사와 파생상품 거래를 해온 AIG는 그동안 저축은행감독청(OTS)의 감독을 받아왔다. 금융위기의 주범인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도 논의만 무성하다. 파생상품도 거래소에서 투명하게 거래되고 상응하는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렇게 되면 시장이 죽을 것이란 월가 금융사의 협박에 묻혀버렸다. 파생상품 시장을 주도해 온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9개 대형 월가 금융사들은 정치권과 정부에서 파생상품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자 작년 11월 'CDS(신용부도스와프) 딜러 컨소시엄'이란 로비기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워싱턴의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펼쳐왔다. 경쟁 관계이지만 이해가 맞으면 연대를 모색해 공동의 이익을 쫓는 게 바로 월가 금융사들이다.
파산법 개편도 사실상 무산시켰다. 미 의회와 연방 정부는 파산법원이 담보주택의 시장가치와 동일한 수준까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원금을 낮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cramdown)를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월가 금융사의 로비에 제동이 걸렸다. 월가 금융사들은 그렇게 되면 모기지 금리를 올리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주택시장 안정을 저해할 것이란 논리를 폈다. 예전에는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던 대형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논의도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월가 금융사들은 단순히 규제 강화에 맞서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기존 규제를 없애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시가평가회계(mark-to-market) 규칙 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역시 은행들은 신용조합 보험사와 연대해 '페어밸류콜리션(Fair Value Coalition)'을 구성해 의회를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활동을 펼쳤다. 미 은행연합회(ABA)는 회계방식 개편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해당 위원회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바니 프랭크 공화당 의원은 3월 말 8500달러를 받았다. 결국 의회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미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는 보유자산 부실화에 따른 금융사의 평가손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둘러 회계제도를 바꿨다. 취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월가 금융사의 부도덕성을 질타해 온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과 추진력이 월가의 막강한 로비에 막혀 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이익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