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업계 "그 흔하던 범용소재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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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산업체 고부가 제품 전환중국 칭다오에서 천막을 생산하는 A사 구매 담당자는 요즘 원료인 얀(Yarn · 섬유처럼 직조 · 가공한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구하느라 속이 탄다. 이달 초에도 LG화학에 필요한 물량을 주문했지만 물량을 다 대주기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절반을 사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는 "불과 1~2년 전만 해도 흔한 소재였는데 지금은 거래처마다 물량이 부족하다는 소리뿐"이라며 "애써 원료를 구해도 가격이 올라 수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비닐봉투,컵,비눗갑 등 생활 주변에서 흔히 쓰이는 플라스틱 제품 원료인 범용소재들이 때 아닌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글로벌시장 위축에 따라 국내 업체들이 생산 규모를 줄인 데다 최근 설비 신 · 증설을 끝낸 중동 및 중국 등 석유화학업체들의 공급마저 예상치를 밑돌고 있어서다.
신ㆍ증설 中ㆍ중동업체는 생산차질
물량 달리자 가격까지 상승세
◆범용제품이 더 귀하다범용소재는 전체 플라스틱 제품의 5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수요와 생산량이 많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돼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기도 하다. PE(폴리에틸렌)를 원료로 만드는 얀을 비롯해 각종 필름소재,사출제품(injection molding) 등이 대표적 범용제품이다.
국내 업체들은 4~5년 전부터 범용제품 생산을 줄이고 기술 개발을 통해 특화용도로 쓰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늘리는 체질 개선에 주력해 왔다. 해외 업체들이 가동 초기 범용제품부터 쏟아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2003년만 해도 범용제품 생산비중이 80% 정도였으나 지금은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작년에는 종량제 쓰레기봉투 원료를 비롯해 월 300t가량의 필름용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삼성토탈 역시 5년 전에 비해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2배가 넘는 70%에 달한다. 상반기 이후 설비 신 · 증설을 끝낸 중동과 중국의 석유화학업체들은 범용소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말레이시아 업체(PETLIN),사우디아라비아 페트로라비 등 중동과 아시아지역에서 10여곳의 석유화학공장들이 설비 이상으로 가동을 멈추는 등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잇따른 탓이다. 공급 부족이 가시화하면서 범용소재 원료인 PE,PP(폴리프로필렌) 가격은 4월 이후 10%가량 올랐다. PE로 만드는 얀은 지난달 중순 코폴리모(가전제품용 고부가가치 소재)와 같은 t당 110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삼성토탈 관계자는 "범용제품은 고부가가치 제품보다 t당 50달러 이상 싼 편이지만 생산물량이 줄다 보니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에야 공급 가뭄 해소될 듯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해외 바이어는 물론 내수시장에도 공급할 물량이 달려 거래선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비닐봉지용 소재인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한화석유화학은 해외 바이어가 요구하는 물량에서 20% 정도를 줄여서 공급하고 있다. 각종 플라스틱 생필품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업체들의 어려움도 많다. 조은택 한국플라스틱협동조합 부장은 "원료를 구하지 못해 기계를 돌리지 못한다는 회원사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이 내년께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중동의 생산이 얼마나 빨리 정상궤도에 오르느냐가 관건"이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수급이 정상화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