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경인씨 "'첫'자 달고사는 여자…쉼 없이 도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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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코리아 첫 한국인 지사장 팽경인씨자신의 이름 앞에 '첫'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면 어떨까. 부담이 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만만한 인생을 살지 않을까.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 이달 초 그룹세브코리아 지사장 자리에 오른 팽경인 사장(46)이다.
그룹세브는 '테팔' 프라이팬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회사다. 1857년 프랑스 버건디 지방에서 탄생한 이 회사는 1953년 세계 최초의 압력솥을 내놓으면서 가정용품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로벤타,크룹스,라고스티나 등 다수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그룹세브에서 첫 한국인 지사장 자리를 맡게 된 팽 사장은 스스로를 '여성 CEO 1세대'라고 칭했다. 적극적으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 대표 세대라는 말이다. 겪는 일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화여대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친 뒤 1989년 처음으로 입사한 곳이 갈색 투명 냄비를 파는 코닝코리아였다. 여직원이라고 하면 으레 비서이겠거니 하던 당시로서는 다소 눈에 띄는 시작이었다.
회사에 들어가 운전면허를 땄더니 '운전면허를 딴 최초 여직원'이란 말이 따라왔다. 결혼을 했더니 '결혼한 최초의 여직원'이 됐다. 여자라서 겪는 웃지못할 일이었다. 그러다 남자들만 하는 영업을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더니 다들 의아하게 쳐다봤다. '술도 못마시고,골프도 못치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팽 사장의 해법은 독특했다. 남자 직원들처럼 술을 마시고 골프를 치러가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아 고객사가 원하는 정보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원하는 정보를 착착 가져다 주니 팽 사장의 위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최초의 여성 영업맨(?)으로서의 길을,그는 그렇게 뚫었다.
1997년 그룹세브코리아로 자리를 옮겨서 사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쉼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독하고 대차게 일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부드럽지만 촘촘하게,그리고 늘 주변사람들을 돌아보는 그만의 방법으로 일을 풀어나갔다. 그가 비프랑스권 출신의 첫 여사장이 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이런 부드러운 카리스마에서 나왔다. 팽 사장은 부임 후 첫 작품으로 추석을 겨냥한 '한국형 프라이팬'을 내놨다. 한국 시장을 겨냥한 한정판으로 전통 한복을 입은 소년 소녀의 모습이 디자인돼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룹세브를 주방용품 회사가 아닌 가전용품 시장의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해 팽 사장은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금활동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사진을 통한 사회공헌을 펼치고 있다. 팽 사장은 "묘비명에 '끝까지 변화하려 애쓰다 죽었다'고 쓸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