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안 IMS사장, 최근 1500만달러어치 추가로 따내

"명랑ㆍ쾌활이 내 브랜드…美정부 광고수주서 통했죠"
제니퍼 안 이미지미디어서비스(IMS) 사장(51 · 한국이름 안진영 · 사진)이 또 다시 일을 냈다. 지난 16일 미국 국토안보부로부터 5년간 1500만달러어치에 달하는 광고대행 업무를 따냈다. 종합광고기획사인 IMS는 멕시코 국경과 캐나다 국경을 지키는 미 정부의 국경 경비대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제작한다. 광고 디자인에서부터 마켓리서치,미디어 광고 및 홍보까지 모두 맡는다.

이번 수주는 불경기에서 건져올린 성과여서 값지다. 안 사장은 "경제위기 탓에 미 연방정부가 올 들어 광고물량 발주를 크게 줄였는데도 그동안 다져놓은 기반 덕분에 수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왜 안되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긍정적인 도전정신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가 이민 1.5세로 미국에 건너온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인 1975년.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했지만 광고사업과 관련한 자신의 끼를 뒤늦게 발견했단다. 하와이에 정착해 한인 TV방송의 앵커우먼으로 일하던 때였다.

"하와이에서 광고 퀸으로 유명세를 탔어요. 당시 방송사의 광고 수주가 시원찮았습니다. 교포들의 광고에 의존하지 말고 미국인들의 광고를 따면 괜찮을텐데라고 걱정하자 사장님께서 친화력이 강하니 광고영업을 직접 해보라는 겁니다. 처음엔 해본적이 없다고 버티다가 안될 땐 안되더라도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현지 자동차딜러,은행에 내가 모델로 무료 출연하겠다고 제안했어요.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대성공이었습니다. 제 방송시간 2시간 중 절반이 광고였습니다. 사장님이 기절할뻔 했지요. 수주 속도를 늦추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

안 사장은 내친 김에 큰 물을 택했다. 워싱턴으로 와 1989년 IMS를 창업했다. 가수 조용필씨의 부인인 큰 언니(고 안진현씨)가 하던 로비회사에서 잠시 일을 돕다가 워싱턴 인근 애넌데일에 사무실을 구했다. 2500달러를 융자받아 자본금을 마련했다. 사무실 하나에 전화받는 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워키토키 무전기를 든 채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영업했다. 1991년 큰 기회가 찾아왔다. 미 통신 대기업인 AT&T에서 연 200만달러의 한국시장 광고물량을 하청업체로 참가해 낚았다. 욕심은 차지 않았다. 그가 겨냥한 쪽은 연방정부 광고 수주였다. 아시아계 광고업계 처음으로 연방정부를 뚫어내는 '파이어니어' 역할을 했다.

창업 10년 만인 1999년,1년짜리 1500만달러어치의 '2000년 미국 인구센서스' 조사원 모집광고 물량을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다. 아시아계 광고업계에 '작은 거인,미다스의 손'이 탄생했다. "총 300만명을 뽑아 최종적으로 인구 조사원 86만3000명을 선발하는 작업이었지요. 목표시한 4개월 전에 목표치를 25%나 초과했습니다. 발주처인 미 상무부가 뒤집어졌어요. 우리가 최우수 회사로 소개됐습니다. "

그 뒤로 IMS는 연방정부의 광고수주 봇물이 터졌다. 지금은 100%가 연방정부 일이다. 안 사장은 한때 무리한 대규모 수주전으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 장기라고 했다. 그는 미국 내 정계,재계는 물론 정운찬 총리 등과도 친분이 두터운 마당발이다. 정 총리와는 어린 시절 서울 같은 동네에서 산 인연이다.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이 남편이다. "미국은 다인종,다민족 사회여서 창의적으로 튀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게 후배들을 향한 조언이다.

"9녀1남 가운데 넷째여서 성격이 밝습니다. 제 성격이 곧 제 브랜드이자 능력이라고 봐요. 어려서부터 성적표에는 '명랑 · 쾌활'이라는 평가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응원단장도 했고요. 훌륭한 직원들이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