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의 심부름

'어머니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니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

필자의 중학교 시절 은사이신 조병화 시인의 시 '꿈의 귀향'의 한 구절이다. 조병화 선생님은 이 시를 자신의 묘비명으로 새겨 줄 것을 후손에게 유탁하셨고,2003년 3월 타계하신 후 고인의 뜻대로 고향인 안성 난실리에 이 작품을 새긴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로부터 삶의 과정 전체를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생각하고,삶의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돌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순박한 사모(思母)의 정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지난해 소천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남기셨다. 소년 김수환의 어머님은 많은 형제 가운데 유독 "수환이 너는 신부가 되거라"라고 늘 말씀하셨고,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종국에는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셨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릴 적 어머니의 심부름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두부 사오기 등의 심부름을 했는데,꼼꼼하게 임무(?)를 수행하지 못해 꾸중을 들은 기억도 있다. 곗돈을 전달하러 가서 어머니 친구분에게 귀여움 받고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시키는 잔일을 하는 것이 심부름이었지만 어머니가 떠나가신 지금은 어떻게 사는 것이 큰 심부름을 잘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필자의 어머니는 평소 출세에 대한 목표를 주입하시거나,무엇을 하거나,무엇이 되라고 하신 기억이 별로 없으니 과연 어머니가 내게 생명과 함께 내려주신 심부름은 뭘까.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함께 사는 열 명 대가족 살림을 통솔하셨다. 살림살이는 항상 쪼들리고 집안 대소사에 해마다 번갈아 닥치는 애들 진학,군입대,면회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어느 짬에 세상 사는 낙을 삼으셨을까 싶다. 그 시절,부산스럽게 시작하는 아침 통학시간이면 부엌 앞마루에 줄줄이 놓여 있던 도시락이며 기워진 양말짝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60년대 일등병으로 군에 복무하던 시절,어머니는 몸이 아픈 내 꿈을 꾸셨다며 면회도 안 되는 어느 날 무작정 시외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산골부대로 오셨다. 기어이 나를 만나 보시고 어스름 저녁에 위병소를 돌아 나가시던 뒷모습은 아직도 마음을 아리게 한다.

모성(母性)은 무한히 주고 온 몸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괴테는'여성스러움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고상한 명구도 남겼다. 누구나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인생의 경이로움과 은혜로움의 가장 확실한 증거다. 자식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서둘러 떠나가신 나의 어머니.조병화 선생님의 시에서처럼 지금 사는 것도 어머니의 심부름이라 여겨보아도 죄스러움과 그리움은 잘 덜어지지 않더니 '언젠가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니께 돌아갈게요'라고 해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박철원 < 에스텍시스템 회장 cwpark@s-te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