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문제는 부실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리먼 부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두바이 사태의 공통 분모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무엇일까. 부실이다. 때로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상이한 분야에서도 부실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이 분명하면 기본 처방전은 비슷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과 의료가 그런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큰 분야다. 예산심의를 방기하는 지금의 국회나 본질에서 빗나간 논쟁이 장외에서 되풀이되는 세종시의 장래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부실이란 무엇인가. 보는 각도에 따라 진단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부실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부터 보자.인적으로 물적으로,공적으로 사적으로,공식으로 비공식으로 투입한 것에 비해 결과가 불균형을 이룰 때가 부실이다. 한마디로 투입과 산출의 비교다. 물론 산출이 적을수록 부실의 정도는 심해진다. 수많은 부실기업들이 그러했고 리스크관리에 태만했던 금융회사들도 이 기준으로 부실판정을 받았다. 한국 교육이 부실하다는 것만 해도 공교육비 사교육비로 연간 수십조원씩 부어넣는 투자(비용)에 비해 쓸모 있는 유능한 인재(결과)를 키워내지 못하는 시스템 평가에서 나온 진단이다. 공보험 사보험으로 매년 막대한 의료비용이 들어가고,공부 잘한다는 학생들도 의대로 몰려만 가지만 우리 의료계의 산업화 정도나 선진화 수준은 또 어떤가. 만족할 만한가. 돈 잘 버는 성형 의사로는 몰리지만 예방의학 교수는 찬밥인 현실,난민수용소 같은 초기 신종플루의 진료현장을 보면 의료도 부실하다. 경제가 중요하다지만 세상만사 돈으로만 볼 수도 없는 일.제도적 · 법적 기준에서 부실이 분명한 경우도 많다. 국회가 대표적이다. 법과 제도상 엄청난 권한과 혜택이 주어지지만 유권자 기대에 못 미친다. 어찌된 일인지 국회의 부실은 갈수록 심해진다. 법,제도,관행에 부실을 낳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 차원 높게 윤리 도덕적 기준에서 규명되는 부실도 있다. 언론에 대한 질타가 그런 류다. 신종플루 강타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성과 위기관리 대응에 대한 토론회에 최근 참석한 적이 있는데 신종플루 보도방식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았다.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이라면 모를까,더구나 제도적 특혜도 없는데 왜 언론보도가 부실하다며 탓할까. 언론에 대한 높은 기대,윤리적 잣대로 부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까닭이다.

어느 쪽이든 새삼 부실에 주목하는 것은 부실의 대가 때문이다. 언제가 됐든 부실은 반드시 뒤탈로 드러나게 돼 있다. 그 대가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경제적 부실이든,제도의 부실이든,도덕적 부실이든 예외가 없다. 부실공사 부실분양이라면 일차 소비자에게 먼저,그런 부실기업 처리는 금융회사가 떠안게 된다. 금융회사에 부실이 누적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해결되고 부실재정은 국민부담이다. 외환위기 때 부실의 대가를 생생히 겪었는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어디서도 예외가 없음이 다시 확인됐다. 제도적 과보호 속에서 세월 보내는 국회의 부실은 올해도 졸속 · 일방 · 불법 예산심의에,아마도 날치기 · 육탄전의 부실한 법안 처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세종시의 장래에도 부실의 공식을 대입해볼 때다. 경제적 손익 관점에서,제도로,미래를 보는 지혜로 부실 요인을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을 앞장서야 할 곳이 부실하니 좀체 해법이 나오지 못한다. 부실예방,그리고 부실화 조짐 때 대응방식이야말로 사회선진화의 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