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79) 예림당…"어린이 도서만 36년…'Why?' 시리즈로 해리포터도 눌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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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만들어보자" 1973년 설립…'작가에게 원고료 지급' 당시론 파격
2002년 'Why?'시리즈 출간…입소문 타고 2700만부 팔려
초등학생은 누구나 한 권쯤 갖고 있는 과학학습만화 'Why?' 시리즈.국내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2000년 공식집계가 이뤄진 이후 지난 3월 유일하게 20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해리포터'도 판매량은 2000만부를 밑돈다. 그간 나온 책을 한 줄로 쌓는다면 높이(두께 1.5㎝)가 백두산(2744m)의 124배에 달한다. 12월 중순 현재 Why?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2700만부에 이른다.
이 책을 만든 회사는 36년간 아동출판업 한 우물을 고집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예림당(대표 나성훈 · 39)이다. 지금까지 발간한 책의 종류만 2700여종이 넘는다. 나 대표의 부친이자 출판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나춘호 회장(69)이 회사를 세운 때는 1973년.
나 회장은 대구 능인고를 졸업하고 계명대에 합격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했다. 그는 1967년 제대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청량리 인근 '일자여인숙'에서 숙식하며 '도서출판 한문당'에서 외판원을 했다. 당시 여인숙에는 깡패,돌팔이 의사,공군 출신 젊은 부부 등이 살았는데 이들과 어울리면서 경험을 쌓았다. 나 회장은 외판원 초기에는 실적이 거의 없었으나 찾아가는 가정집마다 타고난 손재주로 곤로,형광등 등을 고쳐주면서 실적도 좋아졌다.
성실히 일한 덕분에 영업부에서 기획부로 발령받은 뒤 5년간 근무하면서 출판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당시에는 국내 아동출판은 주로 외국 동화를 번역하는 데 매달렸다"며 "우리나라의 어린이 창작동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회사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5년간 부은 적금 30만원을 고스란히 투자했다. 첫 작품으로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는 사진 등의 자료가 없어 중학교 미술선생님을 직접 서울로 모셔 1개월간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마침내 1974년 한글놀이,탈것,동물,색칠학 등 4종을 합본한 '코스모스그림책'을 내놓았다. 마침 연말이어서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초판 2000부가 매진되는 '대박'을 쳤다. 76년에는 박목월 이원수 윤석중 등 당대의 작가들이 직접 쓴 창작동화와 명작동화,위인전 등을 속속 내놓으면서 아동 출판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그는 "그때만 해도 작가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하고 글을 쓰도록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200자 원고지 한장에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고료를 지급해 이후 선례가 됐다"고 전했다.
승승장구하던 예림당은 79년 위기를 맞았다. 당시 업계 처음으로 배송트럭을 운영할 때다. 나 회장은 직접 차를 운전하다가 택시와 충돌사고를 냈다. 5명이 중상을 입었고 나 회장도 2개월 이상 병원 신세를 졌다. 사고 보상비를 위해 집을 담보 잡히고 빚도 냈다. 주변에서는 "예림당은 이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 회장은 퇴원해보니 영업직원이 수금된 돈을 착복하는 등 회사 사정이 엉망이었다.
예림당은 85년 책과 오디오를 접목시킨 '오디오북'인 이야기극장 및 무지개극장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대히트를 쳤다. 그림책의 내용을 성우를 동원해 녹음 · 제작한 테이프와 함께 판매한 것.나 회장은 "밀려드는 주문에 철야를 밥먹 듯했다"며 "이 책은 85~95년까지 10여년간 무려 1억7000만부 팔렸다"고 말했다. 나 회장은 출판시장의 영업 및 유통방식을 바꿔 놓기도 했다. 당시 출판시장은 외판원을 고용한 방문판매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그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서점과 직거래 방식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비아냥거렸던 다른 출판사들도 그 장점이 나타나자 속속 나 회장의 방식을 따라했다. 결국 출판계 영업 및 유통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나 회장은 96년 출판업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에 당선됐다. 이때 단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장남 성훈씨를 불러들였다. 2005년 대표가 된 성훈씨는 "어릴 때부터 창고의 책을 나르는 등 아버지 일을 도왔지만 출판업이 큰 돈벌이도 아니고 해서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다"며 "그러나 아버지가 일궈놓은 일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나 회장은 출협 회장에 연임,협회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회사의 성장이 다소 정체됐다. 나 회장은 "80년대 말 연간 매출이 80억원대에 달했으나 출협 회장을 맡은 6년간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예림당은 90년 초 어린이들에게 기초 자연과학을 만화형태로 공부할 수 있도록 '우주는 왜' 등 왜 시리즈를 내놓는다. 당시 나 회장은 사진 등을 구하기 위해 부산 광복동,서울 명동 등에서 해외 서적을 구하는 한편 사진 슬라이드 확보 등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에 만화가를 직접 고용,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 1년간의 노력 끝에 '왜 시리즈' 10권이 출간됐다. 이 책은 2000년 초까지 10년간 100만부가 판매됐다. 이를 현대화시켜 2002년에 다시 내놓은 것이 이른바 'Why? 시리즈'로 50권이 나왔다. 나 대표는 "이 책은 입소문과 2004년 홈쇼핑 등을 통해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올 회사 예상 매출 500억원 가운데 약 300억원을 차지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나 회장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기도 여주에 약 6만평 규모의 '해여림식물원'을 운영 중이다. 나 회장의 둘째 아들이 식물원 운영 실무를 맡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여주의 숲'이란 뜻을 가진 이 식물원은 2005년 개장했으며 현재 3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나 회장은 "책속에서만 보던 식물 등을 아이들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대,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