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악어의 눈물

나일 강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악어가 있다. 그 악어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죽이고 꾸짖은 다음에 죽은 자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그의 희곡에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악어의 눈물은 위선과 거짓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자에게 눈물은 최고의 무기다.
아름다운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에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랴.
때로는 그 눈물이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 하지만 여자의 눈물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바로 남자의 눈물. 태어날 때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운다는 남자의 세 번 우는 법칙 때문인지 구경하기도 힘든 남자의 눈물을 보면 뜨거운 진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미국에서 어느 유망한 정치가가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매스컴과 시민에 의해 ‘담대함과 냉철함이 부족한 정치가’라는 낙인이 찍혔다.
유교 문화권인 아시아에서는 남자의 눈물에 반감을 갖고 경시한다. 눈물은 버들가지와 함께 여자의 몫으로 치부해 버리고, 남자의 슬플 때의 모습은 눈물대신 속이 시커멓게 탄 것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남자의 눈물은 일희일우(一喜一優)의 나약한 심성의 결과물이며, 나아가 유약한 감정표현의 도구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남자의 눈물이 흔해졌다. 옛날보다 나약하게 키워서 그런지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게 잘 운다. 그것은 남자가 궁지에 몰렸을 때, 남에게 거짓된 진심을 보여야할 때 눈물을 흘리는 치사한 계략가가 흔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경기불황 등 사업상의 악조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대기업 사업가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굳게 믿었던 누군가에 의해 재판까지 받아야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그게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였다. “사람을 어떻게 믿어야할 지 답답합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지만 사람 속만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제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당합니다. 허허허.”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물었다.
“혹시 면회 온 사람 중에 울고 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무조건 울고 간 사람은 믿지 마십시오. 눈물은 값싼 가식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중에 자신의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큰일인데요. 벌써 세 사람이나 울고 갔거든요.”하는 게 아닌가.

남자가 상관 앞에서 보이는 눈물은 미래를 위한 보험이요, 양심을 숨기려는 가식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는 남자 대 남자로, 냉정하게 차후 대책을 논의해야함이 맞다. 상관의 손을 잡고 눈물만 흘리는 사람은 언제 다른 배로 옮겨 탈지 모른다.
섣불리 마음을 주어서도, 비밀스런 일을 맡겨서도 안 된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이 눈물이나 동정 대신 향후 전략이나 대응 방책 등을 말한다면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갈지는 몰라도 그는 믿어도 좋은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도 민첩하게 대처할 뿐 아니라 쉽게 주인을 바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악어의 눈물에 속으면 안 된다.
가볍게 흐르는 눈물은 마르면 그만이며, 믿음과 눈물은 반비례한다.
여자든 남자든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에 이제는 속지 말기를. (hooam.com /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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