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보너스 올핸 줘야죠"…기업자금 대목 불 지펴

유통가 선물 특수
전자 자동차용 저항기를 생산하는 한륙전자의 정인일 사장은 작년 이맘 때 눈앞이 캄캄했다. 월 4억~5억원이던 매출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2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정 사장은 고민 끝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 상태로 가면 퇴직금도 못 주니 회사 문을 닫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금을 10% 반납할 테니 폐업만은 안 된다"고 읍소하는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는 없었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매출은 3~4개월 뒤부터 다시 늘어 지금은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납한 임금은 진작에 돌려줬고 설 보너스도 줄 생각이다.

작년 설에 경기 한파가 몰아쳤던 공단과 유통가에 올해는 '훈풍'이 불고 있다. 빠른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기업 실적 호전→보너스 지급→소비 회복→가동률 상승'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양상이다. 대기업들이 5조원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고 중견 · 중소기업 중에도 보너스 보따리를 푸는 곳이 늘면서 설 대목 경기의 불을 지피고 있다. 수도권 주요 공단의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시화공단은 지난해 1월 65.1%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이 작년 12월 83.0%로 뛰었고 반월공단도 67.3%에서 74.2%로 올랐다.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공단마다 입주 업체 수와 생산량,고용인원이 1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며 "업종별로 체감경기가 다르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한결 '따뜻한 설'을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은 작년에 못 준 설 선물을 대량 구매하는 '큰손' 기업들 덕에 선물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나흘간 매출이 작년 설 시즌 같은 기간보다 126%,신세계백화점은 138% 각각 급증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82%와 150%씩 늘었다. 최원일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은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이 일찌감치 설 선물 구매에 나서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통시장과 불황 업종 중소기업 등 '윗목'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물가가 뛰면서 손님이 줄어든 데다 값싼 품목만 찾아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또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2곳 중 1곳은 여전히 자금난에 허덕인다고 응답했다.

오상헌/송태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