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산 정상서 봄의 정기 받자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개구리가 깨어나고,겨우내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절기다. 매년 봄소식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맘이 설레는 것을 억누르기 힘들다. 다른 계절보다 봄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는 4계절의 시작인데다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이 뒤섞여 있기 때문일 성 싶다.

등산 애호가는 봄을 반기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등산하면서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보람을 이야기할 때 건강한 미소가 만면에 흐른다. 나이 들면 등산만큼 건강에 좋은 운동도 없다는데,나 역시 등산의 매력에 끌리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굳이 고백하자면 산행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몇년 전 봄,고등학교 동창들과 부부 동반으로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시원한 바람에 어우러진 향긋한 꽃과 풀내음이 주는 청량감을 만끽하며 걸었지만,이내 숨이 턱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리까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면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산이란 게 한 번 올라가면 중간에 내려오기 어렵게 돼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일행을 따랐다.

산 중턱에서 몇 차례 휴식을 취하며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도착했다. 이렇게 오른 산 정상에서의 기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짜릿했다. 파란 하늘이 한 뼘 거리도 안 되는 아주 친밀한 느낌으로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고,여기에서 만난 봄바람은 산 아래에서보다 훨씬 싱그럽게 느껴졌다.

'산에 오르길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산행하면서 느낀 힘겨움도 참을 만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앞으로 이 정도 높이의 산은 문제없이 등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또 다음에 산에 오를 경우 예쁜 봄꽃들에 눈길도 주면서 좀 더 즐겁게 올라야겠다는 여유도 생겼다. 자신감 덕에 두둑해진 마음으로 하산을 하며,산이 주는 교훈에 머리 숙여 감사했다. 한 산악인이 "사람들이 아무리 높다고 말하는 산도 실제로 가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 않더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런 것 같다. 시작하기가 어렵지,용기를 가지고 막상 도전해 보면 못할 것도 없다.

이럴 때는 한번 성취한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이 큰 힘이 되곤 한다. 한번 성취했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두 번째 기회를 만들고,이것이 지속돼 노련해지면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이루려 하지 말고,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모든 동식물이 움직임을 계획하는 봄.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산을 찾아 반가운 봄의 따뜻한 정기를 온 몸으로 받아보고 싶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chang@kyow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