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000년 전에도 '장사는 전쟁 하듯이'

상인열전 | 이수광 지음 | 진명출판사 | 376쪽 | 1만3900원
"이 약을 먹고 감기가 나으면 '제생당한약방이 최고다'라고 노래를 부르시오.기왕이면 깃발도 들고 다니면서 부르시오."

구한말 유명했던 제생당한약방의 주인 이경봉은 어느 날 거지가 찾아와 감기약을 좀 달라고 하자 이렇게 시켰다. 며칠이 지나자 한약방에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청심보명단'이라는 종합치료제를 만든 그는 남들보다 앞서 머리를 자르고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중절모까지 쓴 채 경인선 열차에서 약을 팔았다. 그는 곧 경인선의 명물이 됐고,약은 날개 돋친듯 팔렸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마케팅의 귀재였다. 《상인열전》은 이처럼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밑바닥에서부터 장사를 시작해 성공한 20명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낸다. 비천한 기녀에서 조선의 거상이 된 '기생 CEO' 김만덕,면직물을 등에 지고 발품을 팔았던 두산 창업자 박승직,일제 강점기 소금왕 김두원….

이들의 이야기에서 저자가 찾아낸 성공비결은 간단하다. 목숨을 걸고 장사하라는 것.무역왕 최봉준은 러 · 일전쟁의 포화 속을 누비며 러시아 군대에 소를 납품해 돈을 벌었고,거상 임상옥은 청나라 상인들이 인삼불매 운동을 벌이자 가져간 인삼을 불 태우며 배수진을 쳤다. 2000여년 전 중국에서 '상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규는 말했다. "장사를 할 때에는 전쟁을 하듯이 하라."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