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신차 발표회

신선했다. 신차 발표회장에 청바지를 입은 사장이라니.신차 발표회 사진은 오랫동안 거의 똑같았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드레스나 란제리 같은 초미니 원피스 차림의 여성 모델이 자동차 좌우에서 묘한 포즈를 취한 게 그것이다. 간혹 예외가 있었지만 십중팔구 비슷했다.

엊그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기아자동차 '스포티지 R' 론칭 사진은 뜻밖이었다. 자동차 앞에 젊은 여성모델이 아닌 캐주얼한 복장의 남성(서영종 기아자동차 사장)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 아니어도 분명 새로웠다. 자동차 시장은 현재 엄청난 공급 과잉 상태다. 올해만 해도 글로벌 시장의 수요는 6500만대 정도인 반면 공급은 9500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등에서 예측한 올 판매량은 147만대.지난해보다 겨우 2만대가량 늘어나는데 각 업체의 목표 증가분은 20만대다.

신차 발표회는 이 같은 무한경쟁 속에서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음으로써 시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들 기왕이면 새 모델을 원하고 견물생심인 경우도 흔한 까닭이다. 이러니 국내 자동차 회사와 수입사 모두 신차 발표회에 공을 들인다.

신차 발표회의 핵심은 눈길 끌기와 입소문 내기다. 아름답고 늘씬한 모델 기용 관행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변한다. 신차 론칭 방식의 진화는 치열한 경쟁과 시대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일 게 틀림없다. 특급호텔이나 컨벤션센터 중심이던 장소는 해수욕장 · 대사관 · 클럽 등으로 확대되고,공개 또한 무대 뒤에 차를 진열한 다음 막을 걷는 식에서 사람이 직접 타고 등장하거나 헬리콥터에서 내려놓는 등으로 다양화됐다. 공연이나 패션쇼를 개최하고,공식 행사 대신 예비고객 초청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형식 파괴에 따른 홍보 효과를 겨냥하는 것이다.

타깃에 따라 모델의 스타일을 바꾼 곳도 있다. 하지만 대세는 여전히 노출에 중점을 둔 드레스나 초미니다. 여성운전자 1000만명 시대다. 냉장고는 여성,노트북과 자동차는 남성이 구입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기아차의 시도는 무엇보다 뭔가 달라지려 애쓴다는 느낌을 준다. 변화란 한 통신회사의 광고문구처럼 "다 그래를 뒤집어야" 가능해진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mkyung.com